아들 예품, 약 봉투 못챙긴 주민 보여
마을회관에 임시 대피소 설치해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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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만난 강모씨(66)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새벽녘 옆집 주민이 문을 두드리며 "불이야, 빨리 나와요"라고 외쳤다. 강씨는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몸만 빠져나왔다. 급히 언덕을 내려오던 순간 머릿속을 스친 건 아들의 얼굴이었다.
강씨는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하루하루 뼈 빠지게 일해 아들 결혼을 준비해왔다"며 "최근 12월 22일로 날짜가 잡혀 아들 쥐여주려고 모아둔 금반지를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눈물을 보였다.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지붕은 주저앉았고 벽은 숯처럼 타들어 갔다. 창문은 산산이 깨져 있었고 그 사이로는 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둔 연탄이 빼곡히 드러나 있었다. 물에 젖은 이불과 냄비, 그을린 신발이 길 위에 흩어졌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집'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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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결국 약 봉투가 담긴 통을 쥔 채 밖으로 나왔다. 양말 하나 챙기지 못한 맨발 차림이었다. 그는 검은 재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 세상이 가혹하다"고 했다. 박씨는 인근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불길에 휩싸인 집을 향해 체념한 듯 두 손을 모으고 "30년 동안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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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만난 노정애씨(80)는 "뭐라도 챙겨야 할 것 같아서 아무거나 집고 나왔는데, 목도리 두 개뿐"이라며 "내 집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 나이에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고개를 떨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