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포탄·미사일 공장 풀가동...'방산 르네상스'
스텔스·위성 등 핵심 자산 공백, 여전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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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비참한 노예(miserable slave)'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홀로서기를 감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직면하게 됐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을 종합하면, 유럽은 지금 '주권(sovereignty)'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1조달러'라는 거대한 청구서를 받아들고 역사적인 재무장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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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이번 사태를 유럽 전후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쉬운 방법 혹은 어려운 방법'으로 취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유럽은 이것이 단순한 부동산 거래 제안이 아님을 알았다.
독일마셜펀드의 이안 레서 벨기에 브뤼셀 사무소장은 "유럽 안보의 주요 보증국인 미국이 주권과 영토 보전의 개념에 도전한다는 생각은 심각한 우려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야나 푸글리에린 독일 사무소장은 강대국들이 주권을 위협하는 현 상황이 발트해 연안국과 같은 소국들에게는 '비즈니스 모델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작은 나라도 큰 나라와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유럽연합(EU)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20일 다보스 연설에서 "국제 규범에 기반한 질서(Rules-based Order)는 사실상 끝났다"며 "강대국들이 경제 통합을 무기화하고, 관세를 지렛대로 쓰며, 금융 인프라를 강압 수단으로, 공급망을 악용 가능한 취약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시대에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견국(Middle Powers)'들이 생존을 위해 독자적인 협력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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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맞서 930억유로(109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준비했다. 유럽 고위 관료는 "유럽은 주머니 속에 총이 들어있다면 약간의 아첨은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결국 시장의 동요와 유럽의 단호한 대응에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다보스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후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2월 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유럽 8개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단호함·소통·준비태세·단결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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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사적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WSJ는 국방 분석가들이 "유럽이 미국과 독립적으로 싸울 수 있는 충분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답한다고 전했다.
영국 런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 장비와 인력을 대체해 유럽이 완전한 자립을 이루는 비용은 약 1조달러에 달한다. 유럽은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전례 없는 속도로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유럽의 국방비 지출은 약 5600억달러로 10년 전의 두 배를 기록했다.
미국의 투자 리서치 및 자산운용사인 샌포드 번스타인의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2035년까지 유럽의 장비 지출 규모는 미국 국방부(전쟁부) 예산의 8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19년 30%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상승이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유럽연합(EU) 국방·우주 담당 집행위원은 21일 다보스 연설에서 "만약 미국인들이 유럽 대륙에서 미군 주둔을 줄이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유럽 기둥을 구축할 방법을 계획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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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유럽의 방위산업이 수십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드론·전차·탄약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변화의 규모가 명확히 드러난다. 독일 방위산업체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6개의 공장을 신설하거나 건설 중이다.
WSJ는 "라인메탈 혼자서 곧 연간 150만발의 155mm 포탄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미국 방위산업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라고 전했다.
미사일 분야에서도 유럽 최대 제조사 MBDA는 미스트랄(Mistral) 단거리 대공 미사일 생산량을 월 10기에서 40기로 늘렸고, 대전차 미사일 생산량도 월 40기로 두배 확대했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는 불과 2년여 만에 인력을 50% 가까이 늘려 직원 수가 6만4000명에 달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독일의 드론 회사 트웬티포 인더스트리스(Twentyfour Industries)의 클레멘스 퀴르텐 최고경영자(CEO)는 설계도나 직원도 없이 창업해 1년 만에 수백 대의 드론을 판매했다. 그는 "5년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유럽 내 투자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구매 패턴에서도 나타난다. WSJ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덴마크 방산 수입의 79%가 미국산이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각 압박을 가했던 지난해에는 덴마크 무기 구매의 절반 이상이 유럽산이었다. 덴마크 정부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는 유럽 내 조달로의 선회(pivot)를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고 WSJ는 해석했다.
◇ 스텔스·위성의 공백과 방산업 파편화…자립 장애물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WSJ는 유럽의 재무장에 여전히 몇 가지 구멍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략적 조력자(strategic enablers)'라 불리는 첨단 기술 분야다. 유럽은 스텔스 전투기·장거리 미사일·위성 정보 등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자체 생산 스텔스 전투기는 최소 10년이 더 걸릴 예정이며, 독일이 탄도미사일을 발명했음에도 현재 유럽은 장거리 미사일 생산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
알렉산더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21일 다보스 연설에서 "핀란드의 미국산 전투기 편대는 미국 없이는 날 수 없다"고 시인했다. 전투기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조사인 미국의 예비 부품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SW) 업데이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애물은 산업의 '파편화(fragmentation)'다. 로베르토 칭골라니 레오나르도 CEO는 "모든 나라가 자신의 탱크·항공기·함정을 갖길 원한다"며 이러한 투자와 연구개발(R&D)의 분산이 재무장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랑스 다쏘(Dassault)는 라팔 전투기 주문이 220대나 밀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인도량은 월 2대에 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