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차별 딛고 흑인 최초 전국구 대권 도전
'무지개 연합'으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 대변
쿠바·이라크 인질 석방 이끈 '자비의 임무'
트럼프 "실용적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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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목사의 딸 산티타 잭슨은 '아버지'가 희귀 신경 질환을 앓던 중 시카고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
앞서 잭슨 목사는 2017년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공개했으나, 최근 병명은 희귀하고, 특히 심각한 신경 퇴행성 질환인 '진행성 핵상 마비(PSP)' 진단이 확인돼 치료를 받아왔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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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난 제시 잭슨(태생명 제시 루이스 번즈)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어머니 헬렌 번즈는 16세 고등학생이었고, 생부 노아 루이스 로빈슨은 옆집에 살던 33세의 기혼 남성이었다. 그의 이복형제는 훗날 잭슨을 움직인 내면의 동력에 대해 "존중과 인정을 향한 잠재적 갈망이었다"고 회상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잭슨 목사는 고등학교 시절 쿼터백으로 활약하며 일리노이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나, 흑인은 쿼터백을 맡을 수 없다는 차별적 대우를 겪고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로 편입했다.
그는 북부에서도 차별을 경험했고, 이를 '북부의 전설적인 자유주의'라고 비꼬아 비판했다. 그는 1960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카운티의 백인 전용 공공 도서관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 '그린빌 8인'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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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목사는 1960년대 민권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가 1968년 4월 멤피스 로레인 모텔에서 킹 목사가 암살될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잭슨 목사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충격을 "우리는 피에 젖은 채 누워 있는 39세의 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AP는 잭슨이 "킹의 피가 묻은 터틀넥(목이 긴 스웨터)을 이틀간 입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킹 목사의 일부 측근들은 잭슨 설명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NYT는 전했다. WSJ도 잭슨이 킹 목사의 마지막 순간과 관련해 자신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으며 품에 안았다고 했지만, 다른 측근들은 이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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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목사는 1971년 시카고에서 '오퍼레이션 푸시(Operation PUSH)'를, 1984년에는 '전미 무지개 연합(National Rainbow Coalition)'을 설립했다. AP는 그가 "나는? 누군가다. 나는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다"를 반복적으로 낭독했다고 전했다.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그는 흑인 정치인의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WSJ는 "1984년 도전은 전국 단위 대권 선거운동을 벌인 첫 흑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9%를 득표하면서 11개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와 2개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승리해 최종 후보가 된 마이클 두카키스에게 강력한 경쟁을 벌였다.
잭슨 목사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나의 (지지) 유권자들은 절망한 이들, 저주받은 이들, 상속받지 못한 이들, 무시당한 이들, 멸시받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AP는 잭슨 목사가 1980년대 후반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이라는 용어 사용을 촉구하며 문화적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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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목사는 공식 직함 없이도 해외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섰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의 외교 활동에 감사를 표하며 '자비의 임무(mission of mercy)'라고 평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고인은 1984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을 만나 쿠바인 및 미국인 수감자들을 석방하도록 했고, 199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만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억류된 700여명의 외국인 여성과 아이들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공로로 잭슨 목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권위의 '대통령 자유 훈장'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각각 받았다.
◇ 한국 민주화와 특별한 인연
잭슨 목사는 1986년 방한 당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가택연금 상태였던 당시 야당 지도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 부르며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2018년 두 번째 방한에서도 그는 한국 정치권, 종교계와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종전의 날, 평화의 날로 바꿔야 한다"며 종전 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희망을 살려라"… 불완전함을 딛고 '거침없는 기세'로 살다 간 공복
잭슨 목사는 말년에도 사회 정의 활동을 이어갔다. AP는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종식 결의 지지 활동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에도 경찰의 가혹 행위를 규탄하면서 '희망을 살려라(Keep hope alive)', '안도이지 승리가 아니다(It's relief, not victory)'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뉴욕을 유대인 비하 표현인 '하이미타운(Hymietown)'이라고 말하는 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WSJ는 그가 "나는 완벽한 종은 아니지만, 역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공복"이며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잭슨 목사를 "강한 개성과 투지, 실용적 지식(street smarts)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며 "대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고 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