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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회장은 제23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에서 금융 정책의 중심을 지켰다. 이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한국수출입은행장 등을 거치며 국가 금융 시스템과 수출 금융 기반을 다지는 데 관여했고 농협금융지주 회장 재임 시절에는 조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을 주도했다.
책은 이러한 이력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가 직접 겪은 위기와 결단의 순간을 중심으로, 금융 현장의 긴장과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풀어낸다. 특히 대규모 부실을 한 번에 털어내는 '빅 배스(Big Bath)' 전략을 단행했던 경험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건전성을 택한 선택으로 소개된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판단 기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중심에는 저자가 평생 지켜온 '원칙제일주의'가 놓여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규칙 준수의 태도는 금융 행정과 경영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판단의 축이 됐다. 현대투신증권 매각 협상이나 키코(KIKO) 사태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일관된 태도는 원칙이 신뢰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다만 저자는 원칙이 곧 경직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책 제목에 담긴 '물처럼 흐른다'는 표현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원칙을 지키되 변화에 맞춰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균형 감각'을 위기 관리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금융인의 회고록을 넘어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기록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성장해 관료와 금융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조직 내 갈등과 선택, 그리고 일과 가족 사이에서의 고민까지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일이 천금이라면 가족은 천만금"이라는 문장은 성취 중심의 삶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후배 세대를 향한 메시지도 분명하다. 저자는 실패를 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작은 목표를 차근차근 쌓아가며 자신만의 속도를 만들어가라고 조언한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처럼 흐르고 원칙으로 서다'는 한국 금융의 변화 과정 속에서 한 인물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버텨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동시에 빠르게 달라지는 시대 속에서 개인이 어떤 태도로 삶을 설계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금융을 넘어 삶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과 균형의 감각을 되짚게 하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72쪽. 내일날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