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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볼펜의 한국과 연필의 일본, 서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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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24. 18:08

-한국은 총수 결단을 실행하는 '돌파력'이 기업 성장의 동력이지만, 일본은 현장의 종합상사 과장이 사업을 책임지는 구조
-한국기업은 빠르게 디지털 전환에 성공했지만 현장 목소리 반영이 어려운 반면, 일본의 합의를 중시하는 의사결정 방식은 변화에 더딘 단점
-AI 시대를 맞아 한국의 '볼펜(돌파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일본의 '연필(현장의 정보수집력)'의 유연성을 보태야 AI의 파고를 극복할 것

기무라 마사히로 (GTS Advisory 대표)
기무라 마사히로 (GTS Advisory 대표)
과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 몸담았던 젊은 시절, 필자는 한국 기업의 무서운 의사결정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이건 회장님 지시 안건이다. 지금 당장 착수해." 다른 중요 안건을 맡고 있다고 답하자, 상사는 촌각의 지체도 없이 내뱉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넘겨. 이게 제1순위다. 돈이든 권한이든 뭐든지 다 써도 좋다." 다음 순간 주변 동료들이 조용히 내 업무를 차례차례 가져갔다. '시간이 없다', '예산이 없다'는 핑계는 단 1초 만에 해결되었다.

지시 사항을 수행하지 못하면 조용히 자리를 떠나야 하는, 도망칠 곳 없는 세계였다. 한국에서는 최고경영자가 결단을 내리면 조직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볼펜으로 쓴 잉크와 같아서 절대 지울 수 없다. '죽기 살기로 변하라'는 호령, 그리고 군대 같은 돌파력. 이 '속도'야말로 당시의 한국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밀어 올린 원동력이다.

그 후 필자가 20년 가까이 몸담은 일본의 종합상사는 볼펜과는 대조적인 '연필'의 문화였다. '진실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 있다'는 철학 아래, 하나의 과(課)가 독립된 회사처럼 기능하며 현장의 과장이 사업의 모든 책임을 진다.

상대가 사장이라도 논리적인 설명 없이는 수하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법무와 리스크 관리 부서가 사안들을 철저히 검증하고, 지우개로 수정해 가면서 완벽한 품질을 추구한다. 이 상향식(Bottom-up) 합의 형성 과정이야말로 일본 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 구조적 차이는 양국 청년들의 취업관에도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일본의 최고 인재들은 종합상사에 입사해 기꺼이 '진흙투성이 영업의 최전선'을 지망한다. 실제 고객들을 접해 보고 치열한 대금회수 과정 등을 겪어보는 '현장 중심의 성장(たたき上げ)'을 거치는 것이 비즈니스의 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장 영업을 기피하고, 경영기획 등 관리부서를 꽃보직으로 여긴다. 아마도 이상적 관념과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양반(兩班)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획과 관리계층에서 내리꽂는 하향식(Top-down) 경영 스타일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기 어렵다.

한편 한국기업은 일본기업보다 더 빠르게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바 있다. 한국식의 빨리빨리 문화, 톱-다운 문화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반면 일본의 점진주의적이고 매사에 합의를 중시하는 의사결정은 변화에 더딜 수 있는 단점이 있다. AI 시대에는 어떤 경영 스타일이 더 경쟁력이 있을까?

AI 시대를 맞아 최근 한국의 기업들은 의사결정이 대폭 분권화되고, 호칭도 바뀌는 등, 필자가 경험했던 시기와는 분명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만약 아직도 과거의 볼펜 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AI 시대에는 매우 취약해질 것이다. 경영기획도 데이터 분석도 머지않아 AI가 단 몇 초 만에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AI가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마주하며 그 호흡 속에서 움켜쥐는 투박한 '1차 정보'일 것이다.

한국의 '볼펜(돌파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일본의 '연필(현장의 정보수집력)'의 유연성을 더 보태야 AI의 거센 파고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기업 또한 AI 시대를 맞아 한국의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모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볼펜의 한국과 연필의 일본, 아직도 서로 다른 점이 있기에 벤치 마킹을 할 것도 있고,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두 나라 기업경영이 다 똑같아진다면, 뭔가 재미 없어지지 않을까.

기무라 마사히로 GTS Advisory 대표는…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졸업. 연세대 유학(국제교류재단 장학생).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IT 벤처 투자사 e삼성을 거쳐, 도쿄에서 '게임온' 창업 및 상장. 이후 일본 종합상사 소지츠에서 에너지 사업, 해외 사업 총괄로 약 20년 근무. 현재 한일 비즈니스 및 지방창생(지역 활성화) 특화 컨설팅 펌 GTS Advisory 대표, 한국경영인학회(KALM) 이사. 연세대 미래대학원 GTK 9기 회장. 홋카이도대 및 한국외대 등에서 13년 이상 특강 실시. 주요 전문 분야는 한일 비즈니스, 조직문화, 글로벌 인재론.

기무라 마사히로 (GTS Advisory 대표)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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