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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악기' 그 자체에 있다. 현대의 첼로가 화려한 금속 광택과 날카로운 스틸 현으로 무장하고 거대한 콘서트홀을 압도한다면, 바로크 첼로는 사뭇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첼리스트 이유민은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화두를 던진다. 그는 바로크 첼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결핍이 주는 자유'를 꼽았다. "현대 첼로는 악기 하단의 금속 막대인 엔드핀을 바닥에 박아 고정하지만, 바로크 첼로는 오직 연주자의 양다리 힘으로만 지탱해야 합니다. 지지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연주자의 몸과 악기가 하나로 결합하는 밀착감이 들어차죠. 악기를 고정하지 않음으로써 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첼로가 미세하게 요동치는데, 이것이 바로 바로크 음악의 핵심인 유연한 리듬감의 원천이 됩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구조적 차이가 음악의 전개를 완전히 바꾼다는 것이 이유민의 설명이다. 여기에 양의 내장을 꼬아 만든 '거트(Gut)현'이 더해지면 소리는 비로소 입체적인 질감을 얻는다. "매끄럽게 가공된 현대의 소리와 달리, 거트현은 활이 닿는 순간 특유의 마찰음과 함께 서걱거리는 인간적인 숨소리를 내뱉습니다. 완벽하게 정제된 소음이 아닌, 생명력이 살아있는 날 것의 울림이죠. 습도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끊임없이 튜닝을 요구하는 거트현의 예민함이야말로, 우리가 기계적인 완벽함에서 벗어나 음악과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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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이 바흐의 생일을 기념한다는 것이 단순히 바흐의 곡을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 바흐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정밀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소리로 복원해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유민과 함께 바흐의 악보를 들여다보면 단순해 보이던 아르페지오가 하나의 거대한 담론으로 변모한다. "바흐의 곡에는 신을 향한 경외심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와 환희가 공존합니다. 바로크 첼로로 그의 곡을 켤 때면, 3세기 전 라이프치히의 차가운 교회 공기가 제 방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전율을 느끼곤 해요. 그것은 악보라는 평면적 기호를 입체적인 감각으로 치환하는 고고학적 탐구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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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문가적 시각은 자칫 감정과잉으로 흐를 수 있는 낭만 음악에 절제된 품격과 명료한 구조미를 부여한다. 고음악을 전공한 이유민의 이력이 현대 음악 해석에 있어 독보적인 깊이를 만들어내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유민은 전북대학교와 서울중부예술영재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테크닉보다 앞서 '소리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바흐의 곡을 단순히 음표의 나열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음표 하나가 3세기 전 어떤 공기를 가르며 탄생했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연주자의 개성이 투영된 진실한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바흐의 생일 주간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이유민은 거창한 전집 감상보다는 소리의 공간감에 집중해볼 것을 제안했다. "바흐의 음악은 거대한 홀보다 적막한 방 안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스마트폰의 전원을 잠시 끄고, 첼로의 가장 낮은 현이 내는 진동이 방 안의 공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느껴보세요. 눈을 감고 그 소리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음악이 단순한 청각 정보를 넘어 영혼의 휴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유민의 제안은 마치 바쁜 현대인을 향한 예술적 처방전처럼 들린다. 바로크 음악은 결코 낡은 옛것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적인 아름다움으로 돌아가는 가장 정교한 지도다. 거트현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단단한 마음의 울림을 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