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9.5㎝, 닥나무 한지, 대나무·실크실·동양화 물감·먹 등, 2000, 그림 최돈일, 방패연 제작 리기태 Collaboration
방패연 속 '원앙'은 어린 날 저녁 연기 피어오르던 마을 어귀 솟대 위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다독이던 그 새를 고즈넉이 불러낸다. 묵흑의 실루엣으로 단순화된 원앙 떼가 사선으로 치솟고, 붉음·청록·자줏빛 색띠가 날갯짓 사이를 가로질러 화면에 리듬과 숨결을 부어넣는다.
중앙의 백원(白圓)은 군무를 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달처럼 고요히 빛난다. 예로부터 원앙은 화합과 신의의 표상이요, 솟대는 마을 어귀에서 액을 물리치던 수호의 기둥이었다. 최돈일은 그래픽디자이너의 절제된 조형 감각으로 이 오랜 민속의 염원을 현대의 언어로 정제하되, 넓은 여백을 비움이 아닌 소망이 깃드는 공간으로 살려냈다.
가난해도 이웃과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온 백성들의 낙천적 기질과 소박한 꿈을 노래하는 이 작품은, 오늘 하루의 평온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는 이의 가슴 속에 깊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