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특혜 시비에 ‘유찰 후 신규 공고’ 시나리오 부상
軍 “전력화 1년 이상 지연 불가피”… K-방산 행정력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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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자원 급감 시대에 보병을 따라다니며 탄약·부상병 수송, 감시·정찰, 작전지속지원 임무를 수행할 '눈과 발'이 될 무인차량 사업이 업체 간 극한 대립과 방위사업청의 행정 처리 미숙으로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달 성능확인평가를 단독으로 완수하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경쟁사 현대로템은 "공정성이 완전히 무너진 평가"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평가 불참을 선언하고, 방사청이 한화와의 단독 협상을 강행할 경우 낙찰자 선정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사업 자체가 '올스톱' 위기에 처하면서 군 전력화 일정은 최소 1년 이상 지연될 전망이다.
로템 "답안지 수정된 시험"…가처분 신청 등 배수진 치다
현대로템이 불참한 가운데, 한화가 마지막 관문인 성능확인평가(최고속도, 항속거리 등 6개 항목 실물 평가)를 단독으로 완수했다고 지난 3월 19일 발표했다.
그 이후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로템은 방사청이 한화와의 단독 협상을 밀어붙일 경우 '낙찰자 선정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포함한 강력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초기 496억 원 규모(초기 양산분)지만, 향후 후속 물량과 해병대·타군 확대, 드론·AI 체계와의 통합을 고려하면 수천억 원 시장을 좌우하는 분수령"이라며 "절차적 정당성 없이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 로템 내부 기류"라고 전했다.
현대로템의 불만은 방위사업청의 '시제기 관리 부실'에 집중돼 있다.
사업 초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출한 시험용 시제품 2대 중 1대를 전시회 출품 등을 이유로 외부 반출한 뒤 1년 넘게 반납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방사청 승인 하에 이뤄진 반출이었지만, 로템 측은 이를 크게 문제 삼고 있다.
현대로템 관계자들은 "무인차량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나만으로도 기동 특성과 성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외부 반출 기간 동안 시험 환경에 최적화된 '답안지 수정'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무인 지상차량(UGV)의 특성상 하드웨어는 같아도 소프트웨어 튜닝으로 최고속도, 항속거리, 험지 주파 능력 등이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로템의 지적은 기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로템은 'HR-셰르파(HR-Sherpa)'를 앞세워 2020년 신속시범사업을 통해 이미 육군에 국내 최초 무인차량 2대를 납품한 경험이 있다.
로템 측은 "우리 군 임무 환경에 최적화된 실전 운용 경험을 무시한 채 진행된 평가"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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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아리온스멧(Arion-SMET)'이 최고속도, 항속거리 등 6개 항목 실물 평가를 단독으로 통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 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단독 계약을 강행하면 '특혜 시비'와 대형 소송이라는 폭탄을 안게 된다.
이에 방사청 내부에서는 '유찰 처리 후 조건을 재정비한 신규 공고'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찰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두 업체를 다시 경쟁의 장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평가 방식(서류 평가 vs 실물 평가), 시제품 관리 기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통제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지난달 19일 국방부 기자간담회에서 "업체의 의도적인 사업 지연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고의 지연 시 페널티 부과 등 법령 정비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방사청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관리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실제 판단은 4월 중순 이후 나올 가능성이 크다.
8년째 표류…군 "무인화는 생존 문제" 속 탄다
이 사업의 뿌리는 2018년 육군 소요 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현대로템의 신속시범사업으로 첫 진전을 보였으나, 2024년 4월 본격 입찰 공고 이후 평가 기준 논란, 반출 문제, 업체 간 이견으로 2년 가까이 지연됐다.
전체적으로 따지면 8년째 '멈춤' 상태인 셈이다.
정작 속이 타는 것은 현장의 육군이다.
'아미 타이거 4.0'의 핵심인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Manned-Unmanned Teaming) 구현이 차질을 빚으면서 병력 감소에 대비한 무인화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육군 관계자는 "병력 자원 급감 시대에 무인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행정적 미숙함과 업체의 이기주의가 뒤섞여 우리 군의 첨단화 시계만 멈춰 세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향후 벌떼 드론 (swarm drone), 인공지능 AI기반 지휘통제체계와의 통합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국형 무인 지상전 표준'을 정하는 이번 사업의 파행은 단순한 한 건의 입찰 문제가 아니라 K-방산 전체의 체계 통합 능력과 행정 투명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방사청이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명확하다.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신속한 전력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과제다.
업체 간 '명분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군 현장은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을 방사청과 방산업계가 뼈저리게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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