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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유치 경쟁 격화…은행권 ‘질주’ 속 증권사 맹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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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욱 기자

승인 : 2026. 04. 15. 17:50

銀, DC·IRP 중심 적립금 264조 쌓아
증권사, 고수익·상품 다양성으로 압박
실시간 매매 강점에 '연금 무브' 가속
은행권 실적배당형 확대 등 방어 총력
basic2026
은행권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불안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가입자가 운용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IRP를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늘며 시장 내 주도권을 공고히 했지만, 높은 수익률을 앞세운 증권사의 추격이 거세다. 증시가 요동치는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려는 수요가 부쩍 커지면서, 실시간으로 ETF(상장지수펀드) 등을 사고팔 수 있는 증권사로 퇴직연금 자금이 이동하는 '연금무브'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퇴직연금 유치를 통해 비이자이익을 키우려는 은행권으로서는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대응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이에 은행들은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형 비중을 줄이고 실적배당형(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을 확대하며 증권사와의 수익률 전면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또 B2B·WM(자산관리) 사업과의 연계를 통해 고객 락인 효과도 함께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사업을 하는 국내 11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DB·DC·IRP 합산)은 264조1226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4분기(260조5596억원)와 비교해 3개월 새 3조563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폭(3조2297억원)보다 약 3000억원 더 많다. 적립금 순증은 주로 시중은행에 집중됐다. 하나은행이 9224억원으로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고, 이어 KB국민은행(8974억원), 신한은행(8648억원)도 순증 규모가 8000억원을 넘었다.

특히 신한은행은 20년간 퇴직연금 적립금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생명을 앞질렀다. 1분기 말 기준 신한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54조7393억원으로, 삼성생명(53조4763억원)을 약 1조3000억원 차이로 제쳤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객 수요 증가에 맞춰 실적배당형 상품 라인업을 꾸준히 확대하며 DC·IRP 시장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신한은행의 DC·IRP 비중은 67%에 달하는 반면, 삼성생명은 DB형 비중이 76% 수준으로 높다. 1분기 동안 삼성생명의 DB형 적립금이 1조원 넘게 빠져나간 점이 순위 변동의 결정타로 작용했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의 무게추는 DB형에서 DC·IRP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으로 가입자의 사업자 변경 절차가 한층 간편해진 데다, 증시 활황 속 ETF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입자가 직접 운용 방법을 선택하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수혜를 보는 업권은 증권이다. 타 업권 대비 ETF·펀드 라인업이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행과 달리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실시간 매매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신탁 방식인 은행은 ETF 거래 시 주문 이후 체결까지 통상 하루 정도 시차가 발생한다. 최근처럼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고객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권은 실시간 매매 허용을 금융당국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지만, 증권업계의 강한 반발로 제도 도입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위기감이 커진 은행들은 자금 이탈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 핵심은 수익률 제고다.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운용에서 벗어나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 라인업을 확대해 증권사와 수익률 격차를 좁히겠다는 전략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ETF 라인업을 242개까지 늘렸고, 우리은행도 ETF·TDF(생애주기펀드) 중심으로 상품군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은행권의 실적배당형 상품 평균 수익률은 DC형 23.11%, IRP 23.55%로, 증권사와 비교해 격차가 크지 않았다.

퇴직연금을 은행 내 다른 사업과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로 늘어나는 시니어·가족 단위 고객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 사업에서 퇴직연금 관련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은행의 강점인 온·오프라인 채널을 활용해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번에 대규모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체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퇴직연금 가입은 기업체 단위로 주로 이뤄지는 만큼 B2B 영업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금융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은행을 증권사가 따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성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증시 활황 영향으로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증권사 퇴직연금의 선호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실시간 전산이 제한된 은행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금형 퇴직연금 논의가 본격화되는 만큼 수익률 경쟁에 대비해 자산운용 역량을 한층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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