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고전을 오늘의 위로로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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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이서진의 첫 연극 무대였다. 예능과 드라마에서 익숙했던 배우가 과연 체호프의 우울과 아이러니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증이 컸다. 결과적으로 그는 기대 이상의 '바냐'를 보여준다. 무심한 표정, 툭 던지는 말투, 건조한 유머가 인물의 체념과 냉소를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억지로 힘을 주지 않는데도 생활감이 살아 있고,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비애가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인 건 웃음과 쓸쓸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들이다. 객석은 이서진 특유의 리듬에 여러 차례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 끝에는 인생을 허비해버렸다는 바냐의 허망함이 묵직하게 남는다. 연극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이서진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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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규 연출은 체호프의 고전을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비틀기보다,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옮겨오는 데 집중한다. 미니멀한 무대와 절제된 동선, 간결한 조명은 배우들의 감정과 관계에 시선을 모이게 한다. 작품 전체는 마치 드라마터그 이단비가 프로그램북에서 언급한 "나무 그루터기"의 이미지처럼 흘러간다. 거대한 이상이나 성공은 사라졌지만, 상처 입은 채 묵묵히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 공연은 그 평범한 지속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다만 연출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대신, 결정적인 순간의 폭발력은 다소 아쉽다. 마지막 장면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의 감동을 남기지만, 감정의 파고를 조금 더 과감하게 밀어붙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체호프 특유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좀 더 선명하게 터졌다면 마지막 여운은 훨씬 깊어졌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잘 정돈된 공연이지만, 압도적인 연출적 순간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바냐 삼촌'은 충분히 좋은 공연이다. 무엇보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온도를 지녔다. 작품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견뎌보자"고 조용히 등을 두드린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위로. '바냐 삼촌'은 바로 그 힘으로 객석을 물들인다. 공연은 오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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