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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 정유사와 석유화학산업은 중동발 석유 위기를 무난히 견뎌내고 있다. 국제적으로 석유제품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나타나는 '지연 효과'(lagging effect)로 짭짤한 '전쟁 특수'까지 누리고 있다. 정유사가 비축해 두었던 9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공사의 비축유 1억 배럴이 효자 노릇을 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감당하기 어려운 고(高)유가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기 때문이다.
1964년 3만5000배럴 규모의 유공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우리의 정유산업이 이제는 세계 5위의 규모로 성장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가 동아시아의 석유 시장을 떠받치는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이룩한 것이다. 유공에서 출발한 SK이노베이션은 하루 84만 배럴을 정제하는 세계 2위 규모의 설비를 운영하는 '글로벌 그린에너지 선도기업'으로 우뚝 섰다. 우리는 매년 10억 배럴의 원유를 수입·정제해서 생산한 휘발유·경유·등유·항공유·윤활유 중 41%를 수출해서 500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벌어들인다. 특히 우리는 세계 항공유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항공유 수출 대국'이다.
정유사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24 년에는 수출액만 480억 달러로 반도체·자동차·일반기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전체 산업 중 5위를 기록했다. 석유화학산업은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의 후방 산업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핵심 기간산업이다.
정유·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퇴화하고 있는 현실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느닷없이 들고나온 '탄소중립'이 화석연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석유는 섣불리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형차와 중장비에 사용하는 경유와 항공기에 사용하는 항공유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석유의 소비량은 매년 2%씩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합리적인 전망이다.
물론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남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무작정 빈 지게라도 지고 따라나서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욱이 원유는 단순히 연료용 에너지 공급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화학 소재로 사용되는 나프타는 현실적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원유의 도입선을 다각화하고, 비축 물량을 확충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원 개발과 국가기간산업의 탈(脫)정치화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기간산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