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연하와 결혼하고 득남까지
그러나 현재 생활은 완전 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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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도 깡촌으로 불리는 랴오닝(遼寧)성 헤이산(黑山) 출신으로 완전 흙수저라고 해야 한다. 게다가 어린 시절 공부 등에서도 그다지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범한 촌부로 썩어갈 운명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친인척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주 뛰어난 재주가 하나 있었다. 바로 랴오닝성을 비롯한 동북 지방의 전통 연극인 얼런좐(二人轉·두명 전후의 소수 배우들이 하는 스탠딩 코미디 비슷한 장르의 연극)에 관한 한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곧 유명세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이라는 한계는 있었다. 그래서 지방에만 머무르면서 중앙 무대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방구석 여포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던 2001년 어느날 그에게 아주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온다. 스탠딩 코미디의 대가인 자오번산(趙本山·69)이 주최한 한 일런좐 경연대회가 고향 인근에서 열린 것이다. 그는 이 대회에 참가,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일거에 전국구 연예인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이가 몇 살 많지도 않은 자오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일거에 벼락 스타가 되는 감격도 맛봤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자 과거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지우고 싶어했다. 결국 작업에 착수했다. 조강지처와의 이혼이 가장 절실했던 만큼 전 재산을 다 주면서 뜻을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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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초 자신의 처가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이 대부분이었다. "장인, 장모가 아니라 형하고 같이 있구만!", "조강지처 버리고 딸 같은 마누라하고 사니 좋냐?"는 등의 댓글은 완전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조강지처를 버리면 돌아오는 것은 욕 이외에는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