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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우드의 사생활] 조강지처 버린 한때 늦깎이 스타의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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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6. 05. 20. 08:21

40세에 뜬 왕샤오바오 조강지처 버려
19세 연하와 결혼하고 득남까지
그러나 현재 생활은 완전 처참
조강지처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크게 현실적이지 않기는 하나 함께 고생해 성공을 일궈내는 데 일조를 한 부인은 내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반대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말이 아직도 살아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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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어린 부인과 포즈를 취한 왕샤오보./신징바오(新京報).
중국 연예계에 최근 이 교훈을 망각한 채 가정을 박차고 나온 다음 19세 어린 딸 같은 여성과 결혼한 한때의 스타가 온갖 욕을 그야말로 바가지로 먹고 있다. 중화권 연예계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들의 20일 전언에 따르면 주인공은 지난 2001년 무려 40세가 다 된 나이에 공식 데뷔, 일거에 벼락 스타가 된 왕샤오바오(王小寶·62)이다. 연초부터 중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욕받이가 되더니 지금까지 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깡촌으로 불리는 랴오닝(遼寧)성 헤이산(黑山) 출신으로 완전 흙수저라고 해야 한다. 게다가 어린 시절 공부 등에서도 그다지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범한 촌부로 썩어갈 운명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친인척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주 뛰어난 재주가 하나 있었다. 바로 랴오닝성을 비롯한 동북 지방의 전통 연극인 얼런좐(二人轉·두명 전후의 소수 배우들이 하는 스탠딩 코미디 비슷한 장르의 연극)에 관한 한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곧 유명세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이라는 한계는 있었다. 그래서 지방에만 머무르면서 중앙 무대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방구석 여포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던 2001년 어느날 그에게 아주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온다. 스탠딩 코미디의 대가인 자오번산(趙本山·69)이 주최한 한 일런좐 경연대회가 고향 인근에서 열린 것이다. 그는 이 대회에 참가,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일거에 전국구 연예인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이가 몇 살 많지도 않은 자오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일거에 벼락 스타가 되는 감격도 맛봤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자 과거의 인생을 자연스럽게 지우고 싶어했다. 결국 작업에 착수했다. 조강지처와의 이혼이 가장 절실했던 만큼 전 재산을 다 주면서 뜻을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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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한 부인과 가족 사진을 찍은 왕샤오바오./신징바오.
2013년에는 자신의 히트작인 TV 드라마 '샹춘아이칭(鄕村愛情)'의 촬영팀에서 분장사로 일했던 지금의 부인과 결혼도 했다. 이후 잘 나갔다. 득남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이가 든 탓에 출연 제의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사업 실패로 그동안 모은 재산도 탕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마디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내몰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연초 자신의 처가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욕이 대부분이었다. "장인, 장모가 아니라 형하고 같이 있구만!", "조강지처 버리고 딸 같은 마누라하고 사니 좋냐?"는 등의 댓글은 완전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조강지처를 버리면 돌아오는 것은 욕 이외에는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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