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100원' 민사재판으로 전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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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 겸 제11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사법부의 소극적인 판결문 공개에 대해 이같이 비판하며 사법 정보 공개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익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최근 사법부 안팎에서는 판결문 공개 범위 등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소액사건' 재판에서는 여전히 판결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소액사건이란 양수금, 대여금, 구상금, 임금 등 국민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3000만원 이하의 사건을 말한다.
◇100건 중 76%가 '불친절한 판결문'
아시아투데이가 최근 1개월 내 선고된 소액사건 1심 판결문 100건을 분석한 결과, 76건에 판결 이유가 사실상 없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와 같은 주문만 기재돼 있거나 판단 배경이나 이유가 한 줄 혹은 한 문단 수준에 불과했다. 이유가 실리더라도 '증거가 부족하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등 추상적인 문구에 그쳤다.
문제는 소액사건 상당수가 변호사 선임 없이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이른바 '나홀로 소송'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0년부터 5년간 소액사건에서 80% 이상이 나홀로 소송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 국민에게 판결문은 재판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상당수 판결문에 구체적인 판단 근거가 담기지 않으면서 당사자들은 왜 이겼거나 졌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신속한 분쟁 해결이 목적"…절차 간소화 불가피한 법원
소액사건심판법 11조의2 3항은 '판결서에는 이유를 적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소액의 민사사건을 간이한 절차에 따라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다. 소액사건은 법원이 피고에게 청구 취지대로 이행하도록 권고하되, 이의 제기 시 변론기일을 열고 가능한 1회 변론으로 심리를 종결하도록 하고 있다. 변론 종결 후 법관이 선고를 즉시 할 수 있으며, 주문을 낭독하면서 이유의 요지를 구술로 설명할 수 있다.
법원은 소액사건이 대량으로 접수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2년부터 3년간 전체 1심 민사본안사건 중 소액사건은 60% 이상을 차지했다. 즉, 한정된 인·물적 사법 자원 속에서 방대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판결이유 기재 등 일부 절차를 간이화하고 보다 신속한 분쟁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액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민사 합의·단독 사건 평균 처리 기간에 비해 훨씬 빠른 편이다. 2022년부터 3년간 합의사건은 443여일, 단독사건은 224여일의 처리 기간이 소요된 데 반해 소액사건은 135여일이 걸렸다. 소액사건이 2~3배 빠른 것이다.
◇판결 이유 알기 위해 '3000만원+100원' 전략도
법원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두 차례 예규와 법안을 개정했다. 2022년 10월에는 '소액사건 심판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에서 '일정한 경우 소액사건 판결서에도 이유를 기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다음 해 3월 소액사건심판법이 개정되면서는 '일정한 경우'를 판결이유에 의해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 청구 일부를 기각하는 사건에서 계산 근거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소송 쟁점이 복잡하고 다툼이 상당한 사건 등 당사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이 판결문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체적인 판결문을 위해 소액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으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소액사건 소가 기준인 3000만원에 100원을 더 청구해 단독사건으로 넘기는 방식이다.
법무법인 새움 정혜지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나홀로 소송으로 1심을 진행한 뒤 패소해 '항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판결문을 들고 오는 사례가 왕왕 있다"며 "변호사 입장에서도 이유 없는 판결문을 갖고 오면 전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추해 사건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난감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어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등 위자료를 청구해야 하는 사건에서는 판결문에 적힐 사실관계가 매우 중요한 편이라 소가를 상향하는 것을 하나의 전략으로 추천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법관 증원·소액사건 소송지원 변호사제 활성화"
법조계에서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타 국가와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판결은 매우 짧은 편"이라며 "재판받을 권리가 상당히 중요한 만큼 소액사건 판결문 간이화는 권리 침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액사건을 심리하다 보면 승소한 사람도 이긴 이유를 알 수 없고 패소한 사람은 더욱 답답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해 2심이 시작됐는데 이유를 몰라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소액사건의 상소율은 다른 민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22년부터 3년간 소액사건 상소율은 5.5%로 민사 합의사건(46.9%), 민사 단독사건(17%)에 크게 못 미쳤다. 물론 소액이기 때문에 2, 3심까지 갈 필요성을 못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소액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법도 있다. 소액사건심판법 3조는 상고나 재항고 조건을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헌법 위반 여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경우와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경우 두 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항소율이 낮다고 해서 소액사건에 대한 승복률이 높다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판결 이유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호사 없이 진행하고 있는 재판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지레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액사건의 기준을 3000만원으로 두는 것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개인마다 소액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특히 소액사건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소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3000만원 이하 사건의 경우 변호사를 선임할 시 수임료와 인지대, 송달료 등을 고려하면 승소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당사자 손에 쥐는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법률사무소 정 변호사는 "300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누군가에게는 결코 소액이 아닐 수 있다. 하루 일당을 10만원 받는 사람에게는 2주치 금액인 셈"이라며 "판결 이유를 보다 충실하고 상세히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는 적은 수의 판사가 민사 사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소액사건을 처리하고 있어 업무 부담이 과중한 상황"이라며 "법관 증원과 함께 소액사건 소송지원 변호사제 등을 활성화해 저렴한 비용으로 고효율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개정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른 실무 현황을 지속 관찰하면서 이유 기재와 관련해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유의해 살펴보겠다"면서 "변론기일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재판부와 당사자 사이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