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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의 건설몽]이 죽일놈의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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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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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필요한 내 집 마련 징검다리
전세를 없애기 보다 위험한 전세 막기 위해 총력 기울어야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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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 건설부동산 부장
"알바까지 뛰며 한 달을 버텨도,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게 없어요. 그래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전세로 갈 수만 있다면, 매달 버려지는 그 돈만 아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거든요. 젊은 애들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전셋집을 얻으려 하는지, 저는 제 몸으로 배웠어요." 몇 해 전 사기 위험을 알면서도 왜 굳이 택하냐고 묻자 후배가 들려준 답이다.

전세(傳貰).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주거 문화다. 집값의 일정 비율을 보증금으로 맡기고 살다가 계약이 끝나면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자산 형성의 든든한 사다리,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흔드는 거대한 덫...2026년 6월 현재 전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전세 감소는 정상화"라는 발언을 하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로 수많은 세입자가 피해를 입은 만큼, 전세 제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법적으로 인정된 전세사기 피해 규모는 약 3만9000명, 보증금 반환사고 기준으로는 최근 5년 동안 11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서민의 전 재산에 가까운 보증금이 한순간에 위험자산으로 바뀌는 시장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전세라는 제도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세입자는 매달 현금이 빠져나가는 월세 부담을 줄이고, 임대인은 장기 자금을 조달한다. 갭투자와 전세사기라는 리스크가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면 청년·신혼부부·중산층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내 집 마련의 징검다리다.

가령 보증금 3억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전환한다고 해보자. 전월세 전환율을 연 5%로만 가정해도 월 부담은 125만원, 연 1500만원이다. 서울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 은퇴 후 현금흐름이 제한된 고령층에게 이 정도의 고정비 증가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또 전세를 없앨 경우 월세 부담이라는 형태로 세입자에게 이전되기도 한다.

더구나 월세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주거 선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형 임대차 시장의 핵심은 월세라는 형식이 아니라, 세입자가 오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제도에 있다. 계약 기간이 충분히 길고, 임대료가 얼마나 오를지 예측할 수 있으며, 세입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되고, 살 만한 임대주택이 충분해야 한다.

이런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전세만 줄이면 결과는 뻔하다. 세입자는 매달 더 많은 돈을 내야하는 등 주거비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전세가 아니라 '위험한 전세'다. 집값보다 보증금이 지나치게 높은 계약, 집주인의 빚이나 세금 체납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계약, 보증보험조차 들기 힘든 계약이 문제다. 여기에 세입자 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또 다른 집을 사들이는 무리한 갭투자까지 겹치면 전세는 주거 사다리가 아니라 위험한 금융상품이 된다. 전세사기의 상당수도 결국 세입자의 보증금이 안전하게 묶여 있지 않고, 집주인의 투자금처럼 굴러간 구조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정부가 지향해야 할 일은 "전세를 없애겠다"는 경고보다 "위험한 전세는 어떻게든 막겠다"는 다짐이여야 한다. 세입자의 보증금은 보호하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지렛대 삼아 집을 늘리는 구조는 제한하며, 금융권의 보증과 대출에는 위험에 맞는 가격을 매겨야 한다. 정비된 전세라면 여전히 한국 주거 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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