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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들판 위에 내려앉은 거대한 렌즈, 그 ‘느닷없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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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6. 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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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일본 돗토리현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
우에다 쇼지 미술관 전경
우에다 쇼지 미술관 전경.
우리는 흔히 예술의 정점은 도심의 화려한 갤러리나 국립박물관의 엄숙한 조명 아래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적 체험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마치 뒤통수치듯 찾아오는 법이다. 일본 돗토리현 호키초(伯耆町), 다이센(大山)의 산기슭을 달리는 차창 밖의 평범하고 목가적인 시골 들판, 그 평온한 수평의 풍경 위로, 돌연 기하학적인 콘크리트 큐브 네 덩어리가 '툭' 하고 떨어져 내린 듯 나타났다. 이질적이고,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 건축물 앞에 섰을 때, 나는 이 '느닷없음'이 철저하게 계산된 하나의 멋진 연출임을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다.

다이센을 응시하는 거대한 카메라이자, 평생을 모래언덕(砂丘)에서 몽상했던 세계적인 초현실주의 사진가 우에다 쇼지(植田 正治, 1913~2000)의 시선 그 자체인 '우에다 쇼지 미술관(Shoji Ueda Museum)'이다.

미술관 입구의 우에다 쇼지 프로필
미술관 입구의 우에다 쇼지 프로필.
1995년 개관한 이곳은 일본의 건축가 다카마쓰 신(高松 伸)이 설계했다. 그는 우에다의 대표작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 (少女四態)'에서 영감을 받아 네 개의 거대한 구조물을 배치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건축물이 주변 풍경에 녹아들기를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슬릿(slit)이라 부르는 '건물 사이사이에 뚫린 틈'은 웅장한 다이센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고, 얕게 채워진 인공의 수면은 거꾸로 비친 다이센을 투영한다. 이는 건축 자체가 셔터를 누르기 직전의 뷰파인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특히 영상실에 설치된 무게 625㎏, 600㎜의 세계 최대 규모 카메라 렌즈는 실시간으로 다이센의 모습을 벽면에 거꾸로 맺히게 한다. 관람객은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우에다 쇼지의 눈이 되어 자연을 응시하게 된다.

왜 하필 이곳인가? 우에다 쇼지는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境港) 출신이다. 당시 사진가들이 성공을 위해 도쿄로, 뉴욕으로 떠날 때 그는 평생 고향 산인(山陰)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고향은 벗어나야 할 촌구석이 아니라, 무한한 영감을 주는 거대한 스튜디오였다. 그는 집 근처 돗토리 사구(모래언덕)를 무대로 아내와 아이들을 피사체로 세웠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광활한 하늘과 모래를 배경으로 마치 체스판의 말이나 오브제처럼 배치된다. 리얼리즘이 지배하던 당대 일본 사진계에서 그는 철저하게 '연출'된, 그러나 더없이 초현실적이고 모던한 '우에다조(調)'라는 독창적 양식을 완성했다.

우에다 쇼지의 고향인 산인지역 촬영지 지도 판넬
우에다 쇼지의 고향인 산인지역 촬영지 지도 판넬.
미술관이 들어선 자리는 우에다가 생전 즐겨 찾던 촬영지였다. 만약 이 미술관이 도쿄의 롯폰기나 교토의 어느 거리에 세워졌다면, 그저 '한 유명 작가의 기념관'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센의 들판 위에 서 있게 되면서, 작가의 혼과 작품의 배경이 하나가 된 '살아있는 현장'이 되었다. 전시장 입구 벽면의 촬영지 지도가 그 증거다. 돗토리 사구, 다이센, 그리고 우에다의 집터까지 꼼꼼하게 매핑된 그 지도를 보며, 나는 '지역사랑'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했다. 예술가에게 '지역사랑'이란 단순히 "우리 고향이 최고"라고 외치는 '향토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에서 우주적 보편성을 길어 올리는 치열한 탐구의 과정이다. 그는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개인사(史)를 지역사(史)로 확장했고, 척박한 모래언덕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적 토양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우에다 쇼지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의 촬영지로 미술관이 소개되기도 했고, 서울의 갤러리 '피크닉(piknic)'에서의 전시를 통해 많은 팬을 확보했다. 한국의 관람객들이 그의 사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의 사진에 담긴 동양적 여백과 정서적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산인 지방의 쓸쓸하면서도 광활한 풍경은 한반도의 산하와 묘하게 닮았다. 또한 그가 보여주는 '아마추어 정신'은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그는 스스로를 항상 아마추어 사진가라 칭하며 '사진은 즐거운 것'이라 강조했었다. 그의 사진 속에서 인물들은 중력에서 벗어난 듯 가볍고, 현실의 고단함은 초현실적인 유머로 날아가 버린다. 전시실을 돌다 마주친, 모자를 쓴 우에다의 자화상은 마치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우주"라고. 선불교(禪佛敎)에서 말하는 '입처개진(立處皆眞: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의 경지가 렌즈를 통해 구현된 것이 아닐까. 도시 중심주의가 만연한 예술계에서 지역은 종종 극복해야 할 한계로 치부된다. 그러나 우에다는 증명했다. 지역을 '한계'가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볼 때, 가장 독창적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미술관에서 보이는 다이센
미술관에서 보이는 다이센.
미술관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콘크리트 큐브 너머로 다이센(大山)이 붉은 노을을 머금고 있었다. 처음 느꼈던 그 '느닷없음'은 이제 경이로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미술관은 단순히 우에다 쇼지의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가 아니다. 그가 사랑했던 풍경, 빛, 공기, 그리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 그 자체를 박제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역 소멸을 걱정하며 수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쏟아낸다. 하지만 진정한 재생은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리는 것에 있지 않다.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를 예술적 높이로 끌어올리는 것, 그리하여 그 장소가 아니면 안 되는 '대체 불가능한 서사'를 만드는 것.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은 바로 그 해답을 묵묵히, 그러나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들판 위의 이 기하학적 외관의 미술관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발 딛고 선 그곳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고. 그리고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당신만의 보물을 발견할 눈을 가지고 있느냐고. 1만2000여 점의 필름 속에 남겨진 것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삶을 대하는 태도', 바로 그것이었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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