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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인권위의 ‘毒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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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찬 기자

승인 : 2026. 07. 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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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찬 (1)
독립성이 독(毒)이 되면 독선이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입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최근에도 '임기 완수'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과장급 간부들이 보직을 사퇴하고, 대내외적으로 퇴진 요구가 빗발쳐도 법적으로 보장된 직위를 제발로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안 위원장 퇴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그가 '인권'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안 위원장은 2024년 취임 전부터 성소수자등 을 향해 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그를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불과 3개월 뒤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안 위원장을 수장으로 한 인권위는 이후 시민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언급 없이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의견만 내놨습니다.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된 초유의 사태에서 국가인권기구가 시민이 아닌 권력의 편에 선 겁니다.

인권위 설립 근간 자체를 흔드는 행보에도 안 위원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인권위의 절대적인 독립성에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위원장과 위원에 대한 탄핵이나 외부 감사의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업무에 있어 외부 지휘를 받지 않고 모든 주체, 심지어 현행법마저도 '인권'에 벗어난다고 판단되면 개선과 시정 권고를 할 수 있습니다. 법을 넘어 헌법상 불가침 영역인 인권을 성역 없이 수호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인권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기관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했을 때 생깁니다. 안 위원장은 과거 "동성애는 공산주의 혁명의 핵심 수단"이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어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나와 해당 발언을 차별금지법 반대 근거로 들기까지 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위의 수장을 맡는 이가 직접적으로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발언을 내뱉은 것은 그 무게가 다릅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국가에 의해 인권이 침해당했고, 어디에서도 이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겁니다.

계엄 이후에는 인권위의 독선이 극에 달했습니다. 김용원 당시 상임위원은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윤석열 방어권 보장 의결을 두고 "자랑스럽다"고 적었습니다. 인권을 수호하는 최전선에 종사하는 이가 전 국민이 근본적인 자유를 침해당한 사건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것입니다. 이후 국회의 요구를 받아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조사에 나섰을 때도 김 상임위원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가 될까 우려된다"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안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했다는 보고서를 냈을 때도 인권위는 "인권기구의 독립성 확보에 구성원의 안정적 역할이 필수라는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외부 감시는 전부 '독립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맞받아 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위는 그 권위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5월 인권위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혐오표현 없는 선거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표명했습니다. 혐오 발언을 한 위원장과 계엄을 옹호한 일부 위원이 포함된 기관에서 낸 의견입니다. 국가인권기구가 인권 수호에 있어 설득력을 상실하면서, 국민들은 권리를 보호해 줄 마지노선을 잃은 셈입니다.

지금의 인권위는 상징성은 없고 절대적 독립성이라는 빈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사실 이는 특정 개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합의제 기관인 인권위의 인사권을 대통령과 여야가 나눠왔고, 결국 철밥통에 '우리 편'을 앉히는 게 흔한 광경이 됐습니다. 이 상황에서 독립성은 '면책'의 근거가 아닌, 오히려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외부 '지휘'를 배제하는 개념이지, '감시'까지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권위에 외부 감시가 없다면 무책임한 권한을 쥐고 '남의 편'에 핀잔만 주는 기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김홍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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