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 개관특별전 '형상을 넘어 울림으로'…10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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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이 오는 10월 11일까지 제1전시실에서 개관특별전 '김영원: 형상을 넘어 울림으로'를 선보인다.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김영원의 50여 년 조형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는 '인체 형상에 대해 묻다' '부수고 다시 만들다' '생명을 느끼다' '울림이 퍼지다'라는 네 개의 장을 따라간다. 연대는 흐르지만 전시가 좇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다. 인체에서 시작한 작가의 질문이 형상의 해체와 비움을 거쳐 생명과 기(氣), 마침내 '공명'으로 옮겨가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1947년생인 김영원은 김해 진영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인체를 중심으로 조형 탐구를 이어오며 전통적 사실주의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온 한국 구상조각의 대표적인 작가다.
김영원에게 인체는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은 사회와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동시에 존재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1970~1980년대 '중력 무중력' 연작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작품 속 신체는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편안하지 않다. 뒤틀리고 구속되며 때로는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린 듯하다. 왜곡되거나 구속된 몸에는 개인의 고립을 넘어 당대 사회가 품고 있던 긴장과 불안이 겹쳐진다.
중력 역시 신체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물리적인 힘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무게와 그 안에서 벗어나려는 힘이 한 몸 안에서 충돌한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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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김영원의 조각도 '덩어리'에서 '흐름'으로 이동한다. 1994년작 '공(空)-에너지 1·2·3'에서는 비어 있는 공간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김영원에게 빈 공간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히려 기와 에너지가 드나들 가능성이 생긴다. 채워진 부분만큼 비워진 부분이 중요해지면서 조각의 안과 밖을 구분하던 경계도 느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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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작된 '그림자의 그림자 20-1'에서도 인체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몸을 가르고 비워낸 공간이 또 하나의 조형 요소로 작동한다. 비워진 틈으로 빛이 스며들고 그림자가 생겨나면서 조각은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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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어진 질문은 전시의 마지막 '울림이 퍼지다'에서 '공명'에 닿는다. 이곳에서 조각은 더 이상 하나의 독립된 물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작품과 작품, 빛과 그림자, 공간과 신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장(場)을 만든다. 김영원이 말하는 '울림'은 하나의 조각이 홀로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면서 생겨나는 공명이다.
김영원이 공명의 원형을 발견한 곳 가운데 하나가 고대 가락국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구지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라는 집단적인 외침 속에서 하늘과 땅, 인간이 함께 울리는 장면에 주목했다. 개인의 신체에서 시작한 조각적 사유가 타자와 공간의 관계로 넓어지는 대목이다. 가야의 기억이 남아 있는 김해에서 '구지가'의 울림을 다시 호출한다는 점도 이번 전시와 맞닿아 있다.
전시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 공간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2026년 신작 '기 공명 R-1', '기 공명 R-2', '기 공명 R-3'이 놓였다. 각각 300×200×16㎝ 규모의 F.R.P. 대형 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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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김영원의 50여 년은 답을 찾아온 시간이라기보다 질문을 바꾸어온 시간에 가깝다. 인체를 바라보던 시선은 인체를 붙잡고 있는 힘을 향했고, 완성된 형상을 의심하면서 몸을 해체했다. 형상을 비운 뒤에는 생명과 기의 흐름을 찾았고, 마침내 그 흐름은 하나의 작품을 벗어나 공간과 관람객을 향해 번져간다.
그래서 '형상을 넘어 울림으로'라는 제목은 한 전시를 설명하는 문구에 그치지 않는다. 인체를 탐구하던 조각가가 왜 자신이 만든 형상을 부수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김영원에게 형상을 부순다는 것은 조각을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보이는 몸의 경계를 걷어내고 그 너머에서 흐르는 것을 찾는 일이었다. 형상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비우기를 거듭한 반세기. 그렇게 형상에서 출발한 그의 조각은 이제 작품과 공간, 사람 사이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울림'을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