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기자의눈] 탈락은 열 번, 설명은 ‘0’…양산시의 불투명한 복지행정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921010007577

글자크기

닫기

양산 이철우 기자

승인 : 2026. 09. 21. 09:30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이철우4
이철우 전국부 기자
재가복지센터 지정을 신청한 시민이 다섯 번, 아홉 번, 심지어 열 번 넘게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경남 양산시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신청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서류를 고쳐 내고 같은 면접을 반복했다. 그 사이 사무실 월세와 관리비, 통신비는 어김없이 빠져나갔다.

엄격한 심사는 필요하다. 부실 장기요양기관의 난립을 막고 노인과 가족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함과 불투명함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엄격한 행정이다. 점수도, 감점 사유도, 보완할 항목도 알려주지 않은 채 다시 도전하라고만 하는 것은 심사라 부르기 어렵다. 심사권을 쥔 행정이 시민의 자격이 아니라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에 가깝다.

심사 질문을 둘러싼 논란도 납득하기 어렵다. 방문요양기관 신청자에게 "치매 어르신이 기관을 이탈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치매를 세 가지로 구분해 보라"는 질문이 나왔다는 증언이 있다.

방문요양은 요양보호사가 수급자의 가정을 찾아가 서비스를 한다. 이용자가 시설에 머무는 주간보호센터와 운영 방식부터 다르다. 기관 유형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다면 심사위원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질문이 표준 평가항목에 따른 것인지, 심사위원 개인의 판단이었는지조차 신청자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양산시는 질문 내용과 탈락 사유가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신청자는 도대체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질문을 받은 사실 자체가 보완 사항을 알려준 것이라는 설명은 궤변에 가깝다. 답안과 채점 기준을 가려놓고 틀린 이유를 알아서 맞혀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논란은 심사 기준과 전문성 문제를 넘어 담당 공무원의 태도로까지 번졌다.

한 신청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이리저리 찌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심사를 봐서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담당자는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통하지 말고 직접 문의하고 심사에서 실력으로 승부하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부적절하게 전달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했다고도 밝혔다.

정확히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만 따질 일이 아니다. 심사에 영향력을 가진 담당자가 문제를 제기한 신청자에게 '다른 사람을 통하지 말라'거나 '실력으로 승부하라'는 취지로 말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신청자에게는 외부 문의나 언론 제보를 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들릴 수 있다. 더 나아가 문제를 제기하면 다음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다.

공정한 심사라면 신청자가 누구에게 하소연했는지, 언론에 무엇을 제보했는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 그뿐이다. 담당자의 말 한마디가 불이익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다면 그것은 신청자가 예민해서가 아니다. 양산시가 불투명한 심사를 반복하며 스스로 쌓아 올린 불신의 결과다.

"부족하니 보완하라"는 말은 행정적 설명이 아니다. 어떤 평가항목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어떤 서류와 답변이 기준에 미달했는지 알려줘야 보완도 할 수 있다.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있다면 비공개 범위를 최소화하면 된다. 적어도 항목별 평가 결과와 구체적인 개선 방향은 통보해야 한다.

지역 내 재가복지센터가 이미 포화 상태여서 추가 지정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도 떳떳하게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요와 공급을 조사하고 총량제 도입 여부와 수급 계획을 공식화해야 한다.

신청자에게 사무실과 시설, 장비부터 갖추게 한 뒤 기준도 알려주지 않고 반복적으로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공급을 조절해서는 안 된다. 정책적 판단을 심사의 이름 뒤에 숨긴다면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전가된다. 행정이 책임은 피하고 시민의 돈과 시간으로 정책 실패를 떠넘기는 셈이다.

열 번 탈락시킬 수 있다. 자격과 역량이 부족하다면 열한 번째도 탈락시킬 수 있다. 다만 행정은 매번 왜 탈락시켰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심사는 엄격한 심사가 아니다.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의심받아 마땅하다.

양산시는 그동안 신청자에게 전문성과 운영 능력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이제 양산시가 답할 차례다.

심사 기준은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됐는가. 질문은 기관 유형과 업무 특성에 적합했는가. 심사위원들은 해당 분야를 평가할 충분한 전문성을 갖췄는가. 무엇보다 행정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언론에 제보한 신청자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

지정 심사의 목적은 신청자를 길들이는 데 있지 않다. 부실 기관을 가려내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 목적을 잊은 심사는 시민을 지키는 문턱이 아니라 행정 편의를 위해 세운 장벽일 뿐이다.

양산시는 더 이상 침묵과 비공개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시민에게만 자격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양산시가 심사의 공정성과 행정의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이철우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