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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도피 중인 ‘두테르테 오른팔’ 상원의원에 10억원 현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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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10. 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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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 체포영장 피해 1년 가까이 잠적…정부 “무장하고 위험한 인물”
변호인단 “국내 법원 영장 없어 위법” 반발…정부 “통상적 작전 방식”
전문가 “공권력 한계 드러내" 지적
FILES-PHILIPPINES-ICC-POLITICS <YONHAP NO-6215> (AFP)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시절 경찰청장으로서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한 로널드 델라로사 상원의원이 지난 5월 13일 마닐라 상원 의사당에서 체포를 피해 사흘째 농성하던 중 본회의에 참석한 모습. 필리핀 정부는 잠적한 그에게 5000만 페소(약 10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AFP 연합뉴스
필리핀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피해 1년 가까이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는 로널드 바토 델라로사 상원의원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이를 두고 법적 근거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통상적인 공권력만으로는 그를 검거하지 못한다는 무능을 자인한 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8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존빅 레물라 필리핀 내무장관은 최근 델라로사 의원의 체포로 이어지는 결정적 제보에 5000만 페소(약 10억 원)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레물라 장관은 델라로사 의원을 '무장하고 위험한 인물'로 규정하며 "이제 더는 봐주지 않겠다. 그의 범죄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찾아줄 때"라고 강조했다. 경찰 역시 1주일 안에 자수하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레물라 장관은 델라로사 의원이 필리핀 남부 오지에서 중무장한 집단의 비호를 받고 있다며, 검거 작전이 유혈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동료 의원들은 치안 당국에 유혈 충돌 없는 평화적 체포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달라고 촉구했다.

델라로사 의원이 추적 대상이 된 것은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 때문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시절(2016~2022년) 초대 경찰청장을 지낸 그는 당시 강행된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 기간 마약 단속으로 숨진 사람이 1만2000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같은 혐의를 받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미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구금시설에 수감돼 다음 달 30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반면 델라로사 의원은 1년 가까이 법망을 피해 도주 중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ICC가 비공개로 영장을 발부하기 직전 잠적했으며, 해당 영장은 올해 5월 대중에 공개됐다. 그는 영장 공개 무렵 상원의장 선출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의사당에 깜짝 등장해 며칠간 의원실에 머물렀으나, 총성이 울리는 혼란을 틈타 다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거액의 현상금을 둘러싸고 적법성 시비도 불거졌다. 델라로사 의원의 변호인단은 필리핀 국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없이는 당국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없으며, 사전 행정 회람 절차도 거치지 않아 위법하다고 반발했다. 이에 클레어 카스트로 대통령 공보실 차관은 국영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상금 제도는 경찰과 내무부가 통상적으로 활용하는 작전 방식이며, 적법한 기밀·정보 예산으로 충당된다"고 일축했다.

법학계에서는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해석이 나온다. 다윈 앙헬레스 필리핀대 법대 강사는 "내무장관은 도주자 검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에게 재량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제시할 권한이 있다"며 변호인단이 문제 삼은 행정 회람은 자금 집행을 위한 내부 절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적법성 여부와 별개로 이번 현상금 조치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르잔 아기레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 정치학 조교수는 "폭력을 예방하면서 법을 집행하는 '신중함'과 폭력의 위협 앞에 정부 권한이 제약받는 '굴복'은 분명히 다르다"고 꼬집었다. 그는 경찰청장 출신인 델라로사 의원이 사회 전반은 물론 치안 기관 내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구체적인 집행 계획 없이 현상금만 내건 것은 정부가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그를 체포할 수 없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조치가 일관된 전략의 일환인지, 아니면 추적 실패를 만회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한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치 국면이 두테르테 일가와의 여론전에서 번번이 밀리는 마르코스 정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아기레 교수는 두테르테 진영이 현 정부의 사법 조치를 '정치 탄압'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며 "마르코스 대통령은 제도적 권력을 쥐고 있지만, 두테르테 세력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과 여론 형성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홍수 방지 사업 비리 의혹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예산 절차 개혁이 지체되는 등 마르코스 정부 내부의 모순이 두테르테 측의 역공이 먹혀드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짚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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