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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상황은 아니다. 고전소설 ‘채봉감별곡’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니 ‘딸≠뇌물’이었다. 그렇지만 ‘채봉감별곡’은 조선 말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이다. 근거 없이 꾸며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뇌물의 ‘과거사’를 뒤져보자.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자 김춘추는 고구려로 연개소문을 찾아갔다. ‘약소국 신라’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훔쳐간 땅부터 내놓으라며 되레 김춘추를 감금해버렸다. 김춘추는 연개소문의 부하에게 푸른색 베를 바치고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베=뇌물’이었다. 고려 때 권력자 이자겸의 집에는 뇌물이 그치지 않았다. 상해서 버리는 고기만 하루에도 수만 근이었다. ‘고기=뇌물’이었다.
조선 세종 때 김도련이라는 관리는 서류를 조작, 멀쩡한 사람을 노비로 둔갑시켰다. 그 숫자가 1,000명에 달했다. 그 조작된 노비를 병조판서에게 24명, 우의정에게 15명을 바치는 등 실력자들에게 돌렸다. ‘사람=뇌물’이었다.
또 세종 때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는 세금을 착복한 사실이 들통나자 건어, 육포, 화분 등을 배 두 척에 가득 싣고 여기저기 바치면서 무마하려고 했다. ‘건어, 육포, 화분=뇌물’이었다. 중종 때 실력자 김안로는 개고기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바친 개고기를 먹어보고 맛이 마음에 들었던지 곧 벼슬을 내주었다. ‘개고기=뇌물’이었다.
광해군 때 함경감사 심열은 은그릇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 그릇을 여러 사람에게 바쳤다. ‘그릇=뇌물’이었다. 숙종 때 어떤 사람은 권력자의 친인척에게 담배 한 보따리를 바치고 관리에 임명되었다. ‘담배=뇌물’이었다. 숙종 때 어떤 지방관리는 한양의 고위관리들에게 쌀 100여 섬을 상납하기도 했다. ‘쌀=뇌물’이었다.
조선 말 어떤 사람은 정성껏 담근 게장을 싸들고 세도가 김조순의 집을 찾아갔다. 하인이 그따위 게장은 창고에 3독이나 있다며 시큰둥했다. ‘게장=뇌물’이었다.
일제 때 갑부 김갑순은 금으로 명함을 만들어서 뿌렸다. 김갑순은 대전 근처 땅을 모조리 사들인 뒤 땅값을 올리려고 ‘한 조각’을 충남도청 부지로 헌납했다. ‘명함=뇌물’이었다. ‘땅=뇌물’이었다.
뇌물은 오늘날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섹스=뇌물’, ‘상품권=뇌물’, ‘신용카드=뇌물’도 생겼다. 미국 돈인 ‘달러=뇌물’은 제법 흔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뇌물이 등장했다. ‘금(金)도장=뇌물’이다. 그것도 보통 금이 아니다. 나라의 상징인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 부스러기’다.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로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아직까지는 ‘로비 의혹’이라는 보도다. 해명들이 구구했다. 누구는 도장을 받고 50만 원 정도 사례를 했고, 누구는 재질이 금인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서민들은 아기 돌 선물로 반의 반돈 짜리 금반지도 부담스럽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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