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당당하게 걸어와서 때묻은 손을 내밀곤 했다. 아이들의 눈은 흐리멍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어린 아이들이 마약 같은 걸 한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때로는 서투른 영어로 농담을 건네보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잠깐이나마 호기심 묻은 눈을 반짝이며 쿡쿡 웃곤 하는 것이었다.
얼마 안 된 이야기다. 스무 살이 된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27살 연상의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분명히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인데도 또다른 사건들에 묻혀 이 이야기는 겉만 드러낸 채 묻혀졌다.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끔찍한 속사정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영화 '어둠의 아이들' 스틸컷. |
돈 때문에 팔려가 노예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결혼이 아니라 아예 매춘가로 흘러들어 성노예가 될 가능성도 높다. ‘노예’라는 말이 껄끄러운가? 노예제는 이미 과거에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대에도 노예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존재한다. 섬에서 강제로 몸을 팔아야 하는 여성들, 종교 집단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못 먹고 못 쉬고 끝없이 양말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미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알려졌다. 막힌 하수구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거북하고 소름끼치는 사회의 흉측한 일면이다.
최근엔 ‘아저씨’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도 인신매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외화 ‘테이큰’도 마찬가지 주제다. 영화 뿐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에서 할머니가 갑자기 싸움을 걸어와 내리게 되면 뒤에서 인신매매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괴담이 유행했다. 그러나 인신매매는 더 이상 괴담이나 영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 속에 녹아들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 죽이고 있는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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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여행을 가서 들른 식당에서 서빙하고 있는 종업원이 사실은 노예였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의 커피콩을 딴 사람이 강제 노역하는 사람들이라면? 백화점에서 비싸게 팔리는 수공예 카펫을 만든 이들이 아직 10살도 안 된 아이들이라면?
캄보디아 난민 출신 스레이 네앙은 부모로부터 팔려 성노예의 수렁에 빠진다. 인도 카스트 하층 계급인 마야의 가족과 친척들은 빚 때문에 벽돌 가마에서 강제 노역을 겪는다. 우간다의 찰스와 마가렛은 저항군에 납치돼 소년병이 된다.
비극적 이야기다. 문제는 책에 제시된 이 실화들 말고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인신매매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거다.
책은 단순히 인신매매의 충격적인 실상만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그 현장에서 발로 뛰고 눈물 흘리며 이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정의자’ 들을 소개한다.
인신매매된 동남아시아 아이들을 구출하는 화가 끄루 남, 태국 성노예 여성들의 자유를 돕는 애니 디젤버그, 소년병 재활 센터의 상담자를 맡고 있는 플로렌스 라코르 등. 이들의 힘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작은 씨앗에 의해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티나는 미국 내 인신매매 피해자의 대다수가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라고 말한다. “그 또래 아이들 중에서 하룻밤에 열 번도 넘게 강간당하는 인생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아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티나는 준엄하게 묻는다.
| 영화 '사라지는 아이들' 스틸컷 |
그는 우리에게 이런 억울한 사연들을 까뒤집어 낱낱이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국제 반노예 연대’ ‘밤의 아이들’ ‘여성 인신매매 반대 연합’ 등의 사이트 주소가 나와 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재능과 시간과 돈 중에 무엇을 투자할 수 있을까?
구걸하는 사람들을 볼 때 “어차피 다 뺏길 돈” 이라거나 “저 사람들은 사실은 부자고 거짓말쟁이들” 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래도 준다. 늘 같은 자리에서 구걸하던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가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부터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 모아뒀던 돈을 한 젊은 내외에게 건네곤, 힘없이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물론 내가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 짐작할 수는 없다.
나는 천원짜리 한 장을 투자해 저들이 누군가에게 그날 학대당하는 걸 면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좀 더 생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이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후원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함께 봉사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실 때, 지나치게 싼 인형과 양말들을 구입할 때, 이것들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지 한번만 생각해 보라. 희망은 우리가 짐작하지도 못한 곳에서부터 움튼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의 사상가 애드먼드 버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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