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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풍부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입시나 취업, 다른 경제활동 때문이 아닌 시민의 교양으로서 수학이 지닌 의미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돼야 한다. 교양의 범위와 성격은 시대에 따라 역동적으로 재구성돼왔다. 예컨대 현대인들은 소설에 대한 이해가 교양의 범주 안에 든다고 여긴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교양 개념을 근대 이전의 지식인이 접한다면 황당해 할 것이다.
‘수학 교양’이라는 표현을 낯설어하는 이들이 흔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실제로 달라지고 있다, 출판 동향을 보면, 수학사 등 교양서적 판매량이 느는 추세다. 우리는 문학이나 역사를 익히면서, 꼭 입시나 취업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수학이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집합론을 창시한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에 있다.”고 했다. 민주시민의 교양으로서 수학이 지닌 의미가 잘 담겨 있다. 수학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자유의 세계다. 아무리 대단한 석학의 설명이어도,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면 누구나 지적할 수 있다. 증명이나 문제풀이 역시 논리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다. 교재에 나온 풀이 방식만 고집한다면, 이는 명백히 반(反)수학적인 태도다.
수학의 세계는 평등하며 자유롭다. 계층에 따른 격차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학을 교양의 범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을까. 과거의 수학 우등생이 왜 수학 혐오 발언을 하게 됐을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무리한 선행학습을 꼽을 수 있다.
고등학교마저 서열화한 현실 탓에 인지능력이 채 발달하지 않은 아동, 청소년기에 무리한 선행학습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수학 개념을 잘 소화할 여유 없이 무리하게 진도를 나간 탓에, 문제는 잘 푸는데 수학 그자체는 모르거나 싫어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무리한 서열화 교육이 위험한 이유다. 학생의 배우는 속도 차이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활용 교육이 가능해진 지금이 그 때다.
서울시교육청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인공지능 활용 교육을 통해, ‘수학 교양’을 즐기는 학생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