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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대증원 정책의 교훈

[칼럼] 의대증원 정책의 교훈

기사승인 2024. 09. 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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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이병욱 (경영학박사, 전 전경련 기업구조조정지원센터소장)
2024년 들어 역대 정부가 하지 못했던 의대생 증원 정책을 단행한 바 있다. 하지만 좋은 정책 취지에도 불구하고 의정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는 느낌마저 든다. 정책 가운데 가장 좋은 정책은 계속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정책이다. 세상에 완벽한 정책이란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의 말처럼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가장 잦은 실수는 인위적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무리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려고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이다. 과거 추진한 정책들 중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한 정책들이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는 임기 내에 혹은 주어진 시한 안에 성과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너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탓인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정책들은 대체로 시장 친화적이다. 특히 이해당사자가 많은 정책일수록 시장 친화적이다. 그렇지 못한 정책은 성과를 내기 힘들고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정책추진의 전제라 할 수 있는 미래 시장 수급전망에 대한 전문기관의 예측을 참조는 해야 하겠지만 시장참가자들의 육감을 더 중시해야 한다. 과거 전문기관의 예측 가운데 맞은 사례가 별로 없었다. 이는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시장 환경이 불확실하고 늘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전문기관의 분석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 시장 참가자와의 이견과 갈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기관의 예측 결과를 과신하지 말고 시장 참여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거나 시장 자율에 맡기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시해야 하는 것은 일 자체보다 사람과 시장이어야 한다. 정책추진의 결과는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민심을 얻지 못하고 시장과 괴리되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고 심지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든 사업이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힘써야 한다. 경영자 세계에선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우문현답이 있다. 급변하는 현장을 모르면 정책이나 사업은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자유 시장경제를 신봉한다면 더욱더 시장과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효율을 중시하는 행정가적 마인드도 필요하지만 민심이나 시장적 마인드를 읽는 정치적 감각도 중요하다. 행정가이자 정치지도자인 경우라면 행정부처와는 달리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는 이유다. 지도자가 독선이나 아집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주변에 자신과 다른 이견(異見)을 제시하는 악마의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문그룹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사업이나 정책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준비와 관리에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업이나 정책이란 없다. 교세라(Kyocera)와 KDDI의 창립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말한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경영 철학과 함께 매사에 '체크, 체크, 체크'라는 원칙을 통해 철저히 검토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환경은 늘 변하고 정책수단이나 사업 수행능력 또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공공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는 추진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갈등 및 위기관리 대응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과 추진방식 및 협상절차, 갈등발생 시 중재방법 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한 후 정책 입안에 나서야 한다.

정책 당국은 이해당사자와 논의할 여러 대안을 만들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 자율에 맡기는 대안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좋은 정책은 개선할 여지를 남겨놓는 열린 정책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목표나 정책이행 수단들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지도자나 정부의 권위나 체면을 내세워 경직적으로 시장에 대처하게 되면 당장은 정책이 잘 추진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러한 정책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정책은 유연하고 열려 있어야 부작용을 해소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 의대 증원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자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런 정부의 유연한 자세에 호응해 의료계 일부의 '무조건 백지화'와 같은 경직적 자세도 더 유연한 태도로 변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병욱 (경영학박사, 전 전경련 기업구조조정지원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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