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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 라면’ 36년만에 귀환…삼양식품, 제2불닭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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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영 기자

승인 : 2025. 11. 03. 17:07

남대문서 '삼양1963' 출시
우지 파동 아품 딛고 초심으로
사골육수+야채 풍미·식감 살려
2030세대 겨냥·30대 향수 자극
삼양 1963 출시-9169
삼양식품이 1989년 '우지(소기름) 파동' 이후 36년 만에 우지를 활용한 라면 '삼양 1963' 신제품을 출시했다. 사진은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 박상선 기자
"과거의 상처를 넘어, 그 안에서 삼양의 자부심과 진정성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3일 서울 중구 남대문 인근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우지 라면 '삼양1963'을 선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1989년 11월 3일, 이른바 '우지 파동'이 시작된 지 정확히 36년 만이다. 발표 내내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 김 부회장은 "시아버지이자 창업주인 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평생 품고 계셨던 한을 조금 풀어드린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삼양은 오랜 시간 금기어처럼 남았던 '우지'를 이날 정면에 올려놓았다.

36년 전 익명 투서 한 장에서 시작된 '우지 파동'은 삼양의 운명을 바꿨다. "공업용 우지를 쓴다"는 투서 한 장으로 불매 여론이 번졌고, 시장점유율은 40%대에서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라면 판매를 중단하며 100억원 넘는 제품을 회수했고, 3000여 명 직원 중 1000명이 회사를 떠났다.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로 무죄가 확정됐지만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농심이 '신라면'으로 시장을 장악하며 30년 독주 체제가 굳어졌다. 동시에 국내 라면 시장에서 우지는 자취를 감췄고 대신 식물성 유지인 팜유가 업계 표준 원료가 됐다.

삼양이 다시 우지를 꺼낸 건, 과거를 덮지 않고 마주하겠다는 선언이다. 김 부회장은 "오늘이야 말로 '정직으로 시대의 허기를 채운다'는 삼양의 철학이 가장 뜨겁게 증명되는 순간"이라며 "삼양1963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100년 미래를 위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다시 우지라면을 만들어야겠다는 숙명 같은 마음이 있었다"며 "삼양이 K푸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면서 내부에서도 에너지가 끓기 시작했고 '지금이 때'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발표 장소로 남대문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대문은 전 명예회장이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이들을 보고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따뜻한 밥"이라 믿으며 라면 개발을 결심했던 곳이다. 삼양은 다시 이 자리에서 초심을 꺼내 들었다.

'삼양1963'은 우지와 팜유를 황금 비율로 섞은 '골든블렌드 오일'로 면을 튀기고, 사골 육수에 무·대파·청양고추를 더해 깊고 깔끔한 맛을 구현했다. 후첨 동결건조(FD) 후레이크로 식감과 풍미를 살렸다. 가격은 4입 6150원(개당 1538원)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했다.

윤아리 품질안전 부문장은 "우지는 팜유 대비 원료비가 두 배 이상이지만 잘 만든 라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며 "팜유와 우지는 좋고 좋고 나쁨이 아니라 풍미의 차이다. 삼양1963처럼 깊고 진한 국물맛 재현을 위해서는 우지가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물성 유지가 더 살찐다는 편견이 있지만 칼로리는 식물성과 동일하게 1g당 9㎉ 수준"이라고 말했다.

삼양은 이번 제품을 통해 국내 시장 반등도 노린다. '불닭볶음면'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독주하고 있지만, 내수에서는 농심·오뚜기에 이어 3위권에 머물러 있다. 수출 제품은 별도 사양 개발이 필요하다 보니 당분간은 내수 반응을 확인하며 국내 시장 선점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채혜영 삼양부문장은 "기존 삼양라면의 그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타깃은 2030 세대다. 새로운 라면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소비층이란 점에서다. 동시에 우지 라면을 기억하는 50대의 향수도 겨냥한다.

1963년 남대문에서 시작된 '따뜻한 한 끼'는 2025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한때 금기였던 우지를 꺼내든 삼양의 선택은 명예회복을 넘어, 정체된 국물 라면 시장에 내민 또 다른 도전장이다. 김 부회장은 "삼양1963으로 또 한 번의 혁신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삼양식품
우지로 튀긴 면과 사골 육수로 완성한 '삼양1963'. 깊고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 차세영 기자
차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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