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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헌법 9조 내세워 호르무즈 파병 “선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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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03. 23. 13:01

트럼프, 관여 압박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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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헌법 9조를 내세워 호르무즈 해협 자위대 파병에 분명한 한계를 설명했다./사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헌법 9조를 내세워 호르무즈 해협 자위대 파병에 분명한 한계를 설명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유럽, 한·미·일 등의 관여를 거듭 압박하고 있어 향후 일본의 선택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군사작전에 일본이 참여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에 대해 "일본의 법률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담 후 기자단에게도 같은 취지로 "법률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밝히며, 헌법 9조와 안보 관련 법제가 자위대 파견을 제약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총리는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현 단계에서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에 자위대를 보내는 것은 헌법 해석상 쉽지 않다는 인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지속 압박과 '관여 요구' 기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이란과의 전쟁으로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인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위해, 일본을 포함한 각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그는 앞서 에어포스원 기자단에게 "중동 원유에 의존하는 나라들이 스스로의 '에너지 생명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콕 집어 군함 파견을 촉구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한·중·일, 나아가 나토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방위에 나서지 않으면 동맹의 미래가 "매우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발언 수위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대응: '파병 대신 기뢰제거' 여지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정면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본이 당장 '전투 상황'의 해협에 자위대를 투입할 수 없다는 점을 헌법 9조의 제약이라는 틀로 설명하며, 회담을 '최악의 전개'로 끌고 가지 않는 절충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현 시점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자위대 호위함이나 항공기를 직접 파견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은 대신, 정전·휴전 성립 이후의 '기뢰 제거(소해)' 가능성을 언급하며 최소한의 협력 여지를 남겼다.

모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22일 후지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의 기뢰 제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하면서, "미·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정전 상태가 되고, 기뢰가 항행의 장애가 되는 경우에는(자위대 파견을)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는 전투행위와 일체화될 수 있는 '전투 지역' 파견이 아니라, 정전 후 해상 교통로를 복구하는 비전투적 기뢰 제거 작업이라면 헌법 9조와 안보법제 하에서도 검토 여지가 있다는 정부 내 인식을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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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정상회담, 다카이치 내각은 군사 파병 대신 에너지·경제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우회 공헌'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에너지·경제 카드로의 '우회 공헌'
다카이치 내각은 군사 파병 대신 에너지·경제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우회 공헌'을 모색하고 있다. 모기 외무상은 같은 방송에서, 미·일 정상회담 중 알래스카산 원유 수입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고, 일본이 관련 투자에도 나서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 이야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꽤 울려 퍼졌다(강한 호응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250일분을 넘는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비축유 방출과 수입선 다변화, 미국산 원유·가스 도입 확대 등 비군사적 수단으로 에너지 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직접적인 '함정 파병' 요구에는 헌법 9조를 방패로 들이대면서, 미국이 중시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안정에는 투자와 수입 확대, 외교적 지원을 통해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한 셈이다.

◇남은 과제: 헌법 제약과 동맹 압박 사이
다카이치 총리는 국내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자위대 파견 여부를 두고 야당의 공세와 여론의 우려에 직면해 있다. 국회 예산위원회 등에서 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밀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를 또다시 넓히려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 함정을 파견할 예정은 없다"면서도 "법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정리해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안보법제 이후 처음 맞는 대규모 해상 위기 상황에서, '존립 위기사태' 인정 여부와 자위대 해외 파견의 법적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파병 대신 기뢰 소해, 에너지 투자 등 간접 기여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일정 부분 이해를 보이면서도, 일본과 유럽, 한국을 포함한 동맹·우방국들이 "자신들의 에너지 수송로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헌법 9조라는 국내 제약과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동맹 부담 분담 압박 사이에서, 향후 정전 성립 여부와 국내 여론, 연립 여당 공명당의 입장 등을 지켜보며 '정전 후 기뢰 제거' 카드를 구체화할지, 아니면 비군사적 공헌 강화 선에서 버틸지를 선택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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