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오늘, 그때] 미국 신문왕 허스트 손녀 ‘패티 허스트’ 납치사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50204010002754

글자크기

닫기

이재은 기자

승인 : 2015. 02. 04. 14:18

hust-yskim004
패티 허스트
2015년 2월 4일은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억류 중이던 요르단 조종사를 화형에 처했다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해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에 요르단 정부가 보복조치로 IS가 석방을 요청한 테러범을 사형시키는 등 전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974년 이날 미국 신문왕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패티)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한 아파트에서 미국의 과격 도시게릴라 단체(SLA)에게 납치됐습니다. 패티는 당시 19세의 대학생이었는데요. SLA는 미국 정부를 거악으로 규정하고 부의 무상분배 등을 주장한 극좌 무장단체였습니다. 단원은 고작해야 10여 명 수준. 하지만 패티 납치사건으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됐습니다.

패티의 부모는 SLA의 요구에 따라 200만 달러어치의 음식을 빈자들에게 나눠주었고, 자신들이 소유한 신문에 SLA의 광고도 실었다. 그러나 패티는 “SLA의 대의에 따라 함께 투쟁하고, 이름도 체 게바라의 애인 이름인 ‘타냐’로 개명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는 SLA 단원들이 은행을 털고 가게를 습격하는 테러에 가담했고, FBI의 수배명단에 올라 도망다니다 1975년 9월 체포됐습니다.

재판에서 변호인은 패티가 강압에 의해 세뇌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유죄판결이 내려졌는데요. 7년형을 선고받은 패티는 22개월을 복역한 뒤 1979년 가석방됐고, 2001년 복권됐습니다. 이 사건은 인질이 납치범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1945년 미국, 영국, 소련 정상 얄타회담을 개최했고, 1948년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1966년 일본 여객기가 동경만에 추락해 133명이 사망했습니다.

한편 1941년 이날 김지하 시인이 태어났고, 2010년 ‘옥탑방 기부 천사’ 김춘희 할머니가 별세했습니다.
이재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