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이 있듯 한없이 관용의 자세를 견지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문제는 이 경우 잔인하게 대응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용이라는 단어가 도저히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는 처절하게 보복도 한다. 그것도 유효 기간이 따로 없다. 대를 이어 보복을 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오죽하면 ‘30년 전의 원수라도 보복하지 않으면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다.’는 말이 있겠는가. 불구대천(不俱戴天)이니 혈채(血債)니 하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공공연하게 쓰이는 단어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이니 국가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그렇다는 사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보여주는 행보를 일별하면 진짜 그렇다고 단언해도 괜찮다. 웬만하면 일단 관용으로 일관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속내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는 하나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 원조에 적극 나서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표변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얼굴을 바꾼다. 과거사 및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의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수 년 동안 얼굴을 붉힌 것이나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동남아 국가들과 분쟁을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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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중국이 찰떡 궁합을 과시하는 미일의 행보에 대응하기 위해 주변국에도 눈을 돌린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의지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반파시스트승리70주년’ 행사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참석, 거의 동맹국과 다를 바 없는 우호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의 이런 속내를 잘 대변하지 않나 싶다. 여기에 북한 및 대만과도 잇따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최근 들어 외교 정책의 길을 잃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한국이 중국인의 특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국의 이 행보를 예의 주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