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너무나도 중요한 이 이웃이 나쁘면 곤란하다. “모진 사람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말을 상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가능하면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 역시 부단히 기울여야 한다. 한마디로 피곤해진다.
한때 북한과 중국은 좋은 이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세기 말까지는 혈맹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관계도 유지해왔다. 이런 양측의 관계는 그러나 금세기 들어서부터 급속하게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일련의 현안에서 극심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삐걱거린 탓이었다. 급기야는 서로를 좋은 이웃에서 나쁜 이웃으로 생각할 지경에까지 이르게도 됐다. 일부에서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다는 얘기마저 나돌 정도였다. 북한이 오래 전부터 핵미사일을 남쪽이 아는 서북쪽을 향해 겨냥하고 있다는 소문이 베이징에 돌았던 것은 결코 괜한 것이 아니었다.
|
이처럼 양측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미워도 다시 한 번’ 식의 극적인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행보에 적극 나서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쨌거나 사회주의라는 한 배를 타고 있는 현실을 일단 꼽을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지정학적으로 도저히 어떻게 하기 어려운 운명을 인정한 것 역시 이유로 부족함이 없다. 각각 상대의 자금 및 경제적 지원,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이는 속내 역시 거론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미국과 일본이 마치 동맹국처럼 양측을 향해 압박을 가하는 현실이라고 해야 한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별로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손을 맞잡을 필요성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모든 이유를 하나로 포괄하면 국익이라는 절대 명제가 나온다. 국익 앞에서는 이웃은 무조건 좋은 이웃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유추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철저하게 상대를 이용해 실리는 차리는 것이 21세기의 세계에서는 소망스럽다는 얘기가 된다. 갈 길을 잃은 채 헤매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외교가 한 번 벤치마킹을 해도 괜찮은 행보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