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력 인터넷 포탈 사이트 신랑(新浪)의 24일 보도에 의하면 이 순애보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였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노총각 펑신(彭新·43)은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4세 연하의 양류(楊柳)를 소개받았다. 노총각이었던 만큼 당연히 양류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양류 역시 그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비롯한 양류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다. 펑신이 겨우 1500 위안(元·27만 원)에 불과한 한 달 수입을 올리는 가난뱅이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보인다. 그럼에도 펑신은 굴하지 않았다. 허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지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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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를 살더라도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그의 노력은 23일 드디어 빛을 발했다. 양류가 입원한 우한시 중신(中心)병원에서 청혼하고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현재 양류는 계속 투병 중에 있다.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아니 어쩌면 퇴원도 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생을 마쳐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펑신은 좌절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평생 원하던 결혼을 사랑하는 사람과 했기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중국인들이 그가 만들어낸 순애보에 감동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