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베이징에서 타계한 중국 최초의 핵탄두 탑재 미사일 둥펑(東風)-2 개발자 량쓰리(梁思禮) 중국과학원 원사는 자타 공인의 진정한 금수저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버지가 청말의 대 사상가 양계초(梁啓超), 형 두 명이 과학원 원사를 지낸 인물이니 이런 말을 들을 만도 하지 않을까 보인다. 또 누나들도 중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로 유명한 만큼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 될 듯하다.
량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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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타계한 량쓰리 중국과학원 원사. 진정한 금수저였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중국 관영 언론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달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돼 그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 탓에 치료가 효과가 없었다. 결국 심폐 기능이 약해져 숨을 거뒀다. 5일장인 장례식은 18일 바바오산(八寶山)에서 치러졌으나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조전을 보내기 전까지는 타계 사실이 주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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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장례식 전경. 청렴한 생을 산 금수저답게 조촐하게 치러졌다./제공=반관영 통신 중국신문(CNS).
그러나 그는 시 총서기 겸 주석이 조전을 보낸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굳이 양계초의 막내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젊은 시절 미국에 유학, 퍼듀대학과 신시내티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석, 박사를 받은 스펙이 간단치 않다.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귀국해 운반로켓 창정-2를 연구 개발한 업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이 연구를 발판으로 나중 미사일 신기술을 창안, 응용한 끝에 1964년 둥펑-2 발사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또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80세가 넘어서도 꾸준하게 논문과 저작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 돈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 청렴하게 살았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금수저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금수저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