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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는 40세 때는 안후이(安徽)성 성장조리로 옮겨가 근무하는 등 거칠 것이 없었다. 41세 때 통계국 부국장으로 복귀한 다음 다시 48세의 나이에 국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잘 나간 것이 그에게는 화근이 됐다. 자신의 권력과 능력만 믿고 뇌물 수수, 중혼죄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결국 그는 이로 인해 2007년 1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치욕을 겪었다. 비록 가벼운 처벌을 받았으나 옥고까지 치른 만큼 그의 인생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국가통계국 국장을 지낸 이력과 경제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무기로 왕성한 대외활동에 나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도 했다. 현재 그의 명함에 적혀 있는 민성(民生)증권의 수석 경제학자라는 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현재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연료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시간 당 최소 1만 위안(元·180만 원)에 이른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이외에 그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도 개통, 5만 명의 팔로워도 확보하고 있다. 과거처럼 잘 나가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다고 해도 좋지 않나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