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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일본제국주의 2차대전 항복문서 국보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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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6. 05. 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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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친일적인 대만으로서는 이례적
대만이 1945년 8월 옛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중화민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제출한 항복문서를 국보로 지정했다. 또 일제의 중국 방면 전구 총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육군대장이 중화민국에 제출한 항복문서 역시 국보로 결정했다. 대체로 친일적인 데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대만 정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항일
최근 열린 한 역사 포럼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전쟁 승리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 이에 대만은 국민당의 승리라는 입장을 피력, 양안 간 역사전쟁을 불러 일으켰다./제공=양쯔완바오(揚子晩報).
대만 정보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의 12일 전언에 따르면 이 항복문서들을 국보로 지정한 주체는 문화부 문화자산국으로 최근 “이들 항복문서가 대단히 귀중한 문헌으로 중국 역사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대만 당국이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최근 항일 투쟁과 관련해 양안(兩岸) 간에 정통성 문제가 불거진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이 항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공산당이라고 주장하자 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이다.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중국 대륙의 합법 정부였던 대만 국민당의 국부군은 장제스(蔣介石)의 지도 하에 일제 군대와 치열한 전쟁을 벌인 바 있다. 대규모 전투가 1200회, 소규모 전투가 4만회 가까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전사한 병사만 32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만 국사관(國史館)이 지난 해 7월 중국이 9월 3일 행사를 가진 ‘항일 및 반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대응하기 위해 ‘전쟁의 역사와 기억-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학술포럼’을 사전 개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한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장제스 국민당 위원장이 지휘한 중화민국의 대일 항전이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대만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친일적인 성향이 농후하다. 20일 정권을 인계받을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차기 총통 정부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할 정도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그럼에도 일본에 대해 도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역시 중국 변수가 작용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통성이 체제 유지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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