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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옹정과 다소 다른 측면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인간적 욕망에 대한 자제 면에서 그렇지 않나 보인다. 진짜 그런지는 두 사람을 다시 인간적으로 발가벗겨봐야 알 수 있다. 먼저 옹정의 경우를 보면 그는 불교도답게 정말 청교도적인 생활을 했다. 시 총서기 겸 주석 역시 상당히 욕망을 자제하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권력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최근 중국 당정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 쏠리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보면 진짜 이런 생각은 지우기 힘들다. 시진핑 배지의 유행,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로 불리는 것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인기, 그에게 충성맹세를 아끼지 않는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의 존재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 점에서는 그는 신하와 처남의 부인댁에까지 마수를 뻗쳐 자식을 낳게 만든 욕망의 화신인 옹정의 아들 건륭(乾隆) 황제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더 심하게 말하면 중국을 10년의 동란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문혁)의 주역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건륭 시기는 흔히 중국 5000년 역사상 최고의 융성기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때 이미 그의 욕망에 따른 온갖 실정으로 몰락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말도 듣는다. 물극필반(物極必反·극성기에 이르면 반드시 쇠락함)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마오 전 주석이 발동시킨 문혁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야 한다. 그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권력을 장악했으나 중국은 이로 인해 오랫동안 암흑기를 견뎌내야 했다.
시 총서기 겸 주석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바로 나온다. 건륭이나 마오 전 주석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경기 침체가 예상 외로 오랫동안 지속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아가 그 자신이 부르짖는 신창타이(新常態·중저속 하에서의 질적 성장)라는 경제 전략의 실현도 쉽지 않다고 해야 한다. 지족(知足), 다시 말해 족함을 알고 권력을 일정 부분 나누는 것에 자신도, 중국도 다 사는 답이 있다는 말은 결코 사족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