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단의 곤륜산맥으로 불리던 저명 작가 첸중수(錢鍾書·1910-1998)의 부인이자 저명한 작가 겸 여류 번역가인 양장(楊絳) 여사가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105세로 고령에 따른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입원 중이던 베이징 셰허(協和)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슬하에 베이징사범대학 영문과 교수를 지낸 고명딸 첸위안(錢瑗)이 있었으나 남편보다 1년 빠른 1997년 잃었다. 당시 57세였던 첸위안이 척추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것. 두 번 결혼한 첸위안은 자신 소생의 자녀가 없었으니 대가 끊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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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타계한 양장 여사. 문화곤륜이라는 별명을 듣던 저명 문인 첸중수의 부인으로 유명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관영 신화(新華)통신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양 여사는 본명이 양지캉(楊季康)으로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비교적 개화적인 분위기였던 탓에 학창 시절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등지를 돌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대학은 쑤저우의 둥우(東吳)대학을 나왔다. 나이 21세 때였다. 그녀는 그러나 대학 졸업에 만족하지 않고 바로 칭화(淸華)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해 외국어 문학을 전공했다. 한 살 많은 남편 첸중수를 만난 것은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1935년이었다. 문학적으로 통했던 것이 가정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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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 여사와 남편 첸중수, 딸 첸위안이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이제 모두 고인이 됐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
그녀는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1938년 귀국,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중에는 모교인 칭화대학 외국어과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49년 이후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외국문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작가로서도 주옥같은 작품들을 많이 썼으나 번역가로 더 유명했다. 그녀의 손을 거친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16세기 소설 ‘라 비다 데 라자리요’, 프랑스 걸작 ‘질 블라스 이야기’(Histoire de Gil Blas de Santillane), 그리스 고전 플라톤 ‘파이돈’ 등의 번역본은 지금도 중국 번역문학의 ‘백미’로 꼽힐 정도다. 남편의 그늘에 가려 있지 않았다면 일세를 풍미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