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양승태 대법원 거래 정황 '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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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77년 전인 1941년 17세의 나이로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매일 12시간씩 고체 연료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나온 철을 가마에 넣는 중노동이었다. 고통스러운 작업환경으로 용광로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손에 쥔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제철소는 “대신 저축해준다”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해방을 맞은 이씨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제철소를 찾았지만, 전후 폐허가 된 공장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기했던 징용의 대가를 되찾기 위해 제철소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건 60년이 더 지난 2005년 2월에서였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가 그해 처음으로 공개되며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살아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1·2심 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할아버지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시 내용대로 신일본제철이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감격적인 승소였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은 재상고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과 1년 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내린 만큼 결론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사건임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와 유족이 빠른 판단을 촉구해도 대법원의 심리에는 이렇다 할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5년이 무의미하게 흐르며 소송 원고 중 생존자는 1명만 남았다.
이해할 수 없던 대법원의 재판 지연은 서울중앙지법 사법 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에 의해 의혹의 단서가 상당수 드러났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들이 2013년∼2016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수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소송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법원행정처 측은 외교부가 전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의견서를 제출해주면 이를 빌미로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넘기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 판결을 뒤집는 방안을 정부 측에 직접 제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위해,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은 물론 판사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해 이 같은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2016년 말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며 이들의 계획은 중단됐다.
검찰은 이런 재판거래 의혹의 전면에 나선 판사가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이 재판지연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은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이 같은 재판거래 의혹에 윗선 개입 여부 등을 추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