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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영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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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일 기자

승인 : 2022. 01. 02.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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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아청색의 대례복을 입은 세자빈. 왕비는 붉은색을 입는다.
3. 追慕 그리운 마음으로 쓰다
嗚呼! 詩不云乎 아아, 시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父兮生我 母兮鞠我 아버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길러주셨으니
慾報之德 昊天岡極 그 은덕을 갚으려면 넓고 큰 하늘처럼 다함이 없겠구나

영조
설중매가 아니라 눈과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핀 창덕궁 산수유.
<해설>
영조의 시 831수와 문 691편이 《조선왕조실록》과 국왕의 시문집인 《열성어제》에 실려 있다.
시는 국가적인 행사와 신하들에게 내린 것이 많으며, 주변의 경물을 읊거나 자신의 감회를 토로하거나 그림이나 서책을 보고 지은 작품도 적지 않다. 이 시는 영조의 어필만큼이나 형식이 아주 특이하다. 흔히 4구로 된 절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8구로 된 율시도 아니다. 시의 내용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전형적인 유교 사상의 근간인 효를 주제로 한 것이다.
영조는 7세 때 자신을 낳아 준 숙빈 최씨와 인현왕후가 차례로 사망한 뒤, 숙종의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 밑에서 자랐다. 훗날 대비가 된 인원왕후는 자신의 호적에 연잉군(훗날 영조)을 아들로 입적시킨 뒤,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승하하자 그를 왕위에 올리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후 영조는 자신을 후원해 준 인원왕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어머니처럼 성심을 다해 모셨지만, 대비는 1757년(영조 33)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시의 제목이 ‘추모서(追慕·그리운 마음으로 쓰다)’인데, 아마 영조는 자신을 키워주고 후원해 준 인원왕후가 7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시를 쓴 것이 아닐까?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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