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인터뷰] 이정식 전 고용부 장관 “노란봉투법, 노사관계의 분기점… 모순과 갈등 정리해야”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827010013026

글자크기

닫기

김남형 기자

승인 : 2025. 08. 26. 17:40

[노동개혁 길을 묻다]
제도 실효·수용성 위해 숙의 과정 필요
노사가 현장서 질서 만들어가는게 중요
교섭단위·사용자 범위 정의 핵심 쟁점
모두가 책임감 갖고 상생 해법 찾아야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에서 아시아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병화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통과로 한국 노사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한국 노사관계가 겪어온 모순과 갈등을 정리하고 새로운 틀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한국 노사관계가 굵직한 전환점을 거치며 진통을 반복해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전에는 노동3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았고, 87년 이후엔 민주화 흐름 속에서 노조가 급격히 성장하며 투쟁이 거세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산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최근에는 주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으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며 "이번 노란봉투법 역시 그와 같은 굵직한 분기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5일 서울 동작구에서 진행된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제도가 바뀌어도 현장에서는 불신과 갈등이 반복돼 왔다"며 "이번 개정이야말로 누적된 문제를 정리할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하청 노동자가 원청의 지휘·통제를 받으면서도 법적으로는 교섭 상대가 될 수 없었던 불균형, 주52시간제·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제도 도입 과정에서 현실과 제도의 정합성이 떨어진 구조 등을 대표적 문제로 꼽았다.

아울러 노사문제가 지나치게 사법 절차에 의존하는 현실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은 "노사 갈등이 생기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풀기보다 사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됐다"며 "이제는 법정 공방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20여 년간 한국노총에서 활동하며 정책본부장을 맡는 등 '노동계 브레인'으로 불렸고,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거쳐 윤석열 정부 초대 고용부 장관을 맡아 중대재해처벌법 등 굵직한 현안을 챙겼다. 퇴임 후에도 노동문제 연구와 저술, 강연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이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장관 재임 시절 대통령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장관으로 있을 때 거부권을 건의한 이유 중 하나도 결국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법리적·현실적 문제도 있었지만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급하게 처리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제도의 실효성과 수용성을 위해서는 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정안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용자 범위 확대, 교섭·쟁의 대상 확대, 손해배상·가압류 제한 세 가지다. 불법 쟁의를 합법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갈등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원청이 교섭 테이블에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곧바로 풀리지는 않는다.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교섭의 단위와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원청은 '구체적·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다투게 되면서 새로운 법적 분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법 조항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결국 노사 당사자가 현장에서 신뢰를 쌓고 초기업 단위 교섭 등 자율적으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법 통과 직후 GM 철수설이 불거졌다. 노란봉투법이 자동차·조선 등 대형 제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GM이 철수를 거론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통상임금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는 국제통상 환경, 특히 미국의 관세 정책이 더 큰 요인이다. 기업이 법을 핑계 삼아 위기를 과장하는 것은 '공포 마케팅'이다. 기업들이 어려운 시기이긴 한데, 어렵다면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동계의 협조를 구하는 게 신뢰를 쌓고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잘나갈때 공정한 분배 없이, 어려울 때만 협조를 구하면 반기업 정서만 키울 뿐이다."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추가 과제를 요구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특수고용 권리 보장 같은 과제는 반드시 논의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대기업 원청 노조가 하청·협력업체를 외면하고 자기 조합원만 챙긴다면 원청도 어려워지고, 국민 신뢰도 얻지 못한다. 노조가 힘이 있을 때 자제하지 못하면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노동운동은 약자를 보호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으로 가야 한다."

-내년 시행까지 6개월 준비기간이 있다. 정부와 노사에 필요한 것은.

"법만으로 문제를 풀려 하지 말고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지침과 매뉴얼을 내야 한다. 교섭 단위와 사용자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노조법 30조 3항의 내용처럼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 노사가 직접 부딪치게 두지 말고 정부가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TF를 가동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사관계의 향후 과제를 어떻게 보나.

"노사관계는 늘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이었다. 노조가 힘이 있을 때 자제를 못하면 기업은 반작용으로 강하게 대응했고, 기업이 무리한 구조조정을 하면 노조가 반작용으로 강경 투쟁에 나섰다. 노사정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신뢰를 회복하며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이번 변화를 혼란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갈 수 있다."
김남형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