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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 북유럽의 울림으로 시벨리우스가 남긴 숲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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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0. 12. 08:00

지휘 장 구오용, 협연 송지원이 함께하는 시벨리우스 스페셜
함신익 예술감독과 심포니 송이 선보이는 마스터즈 시리즈 여덟 번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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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온기와 서늘함이 교차하는 10월, 북유럽의 호수와 숲을 닮은 음악이 서울의 밤을 적신다. 오는 16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마스터즈 시리즈 여덟 번째 무대는 핀란드의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세계로 향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장 구오용(Zhang Guoyong)이 객원으로 지휘봉을 잡고, 함신익 예술감독이 기획을 총괄하며,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이 협연자로 참여한다. 세 예술가가 만들어낼 북유럽의 청명한 공기와 깊은 울림은 서울의 가을밤을 한층 더 맑게 물들일 것이다.

'마스터즈 시리즈'는 단순한 교향악 무대가 아니다. 함신익 예술감독이 주도해온 이 시리즈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삶에 감동으로 닿을 수 있음을 지향해 왔고, 매 회차마다 주제와 작곡가,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적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번 여덟 번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시벨리우스는 북유럽의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음악으로 그려낸 작곡가다. 그가 남긴 선율에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함신익 예술감독은 이번 무대를 두고 "가을의 청취와 향기, 기와 온도, 그 모든 감각에 시벨리우스의 음악만큼 어울리는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무대는 한 계절의 공기를 온전히 음악으로 옮겨 담는 시도다.

공연의 문을 여는 곡은 시벨리우스의 대표적인 관현악 소품 '슬픈 왈츠(Valse triste), Op.44'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꿈을 모티프로 한 이 곡은, 부드러운 왈츠 리듬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생의 빛을 노래한다. 왈츠이지만 춤추지 못하는 음악, 리듬 안에서 멈춰버린 숨결이 이 작품의 본질이다. 짧은 길이 속에 시벨리우스 특유의 고독과 절제가 녹아 있으며,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일 만큼 대중에게도 친숙하다. 그의 지휘는 감정의 절제 속에서 구조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시벨리우스가 바라본 자연의 서사를 또 다른 질서로 그려낼 것이다.

두 번째 무대는 시벨리우스가 남긴 유일한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번호 47'이다. 협주곡이라는 형식 안에서 작곡가는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대립과 화해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투쟁과 해방을 그린다. 이날 무대의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조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제무대의 주목을 받아온 연주자다. 송지원의 연주는 늘 정제된 울림 안에 내면의 온기를 품고 있다. 화려함보다 명료함, 기교보다 진정성이 앞선다.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그러한 해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한 음 한 음이 북유럽의 대지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다져져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송지원의 섬세한 해석과 젊은 단원들의 패기 있는 연주가 만나면, 이 곡은 단순한 협주가 아닌 감정의 서사로 완성될 것이다.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5번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82'다. 1915년, 작곡가가 자신의 50세 생일을 맞아 핀란드 정부의 헌정으로 작곡한 작품으로,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가 자연과 인간, 신비와 초월의 경계에 도달한 시기를 대표한다. 핀란드의 숲과 호수, 그리고 백조가 비상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교향곡은 서사적인 구조 속에서 점차 빛을 향해 상승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마지막 악장의 반복되는 동기와 상승하는 리듬은 청중의 감정을 서서히 고양시키며, 마치 북유럽의 겨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백조의 날갯짓을 보는 듯한 전율을 남긴다. 장 구오용의 지휘는 이 웅대한 자연의 서사를 섬세한 구조로 끌어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정하고 절제된 제스처 속에서도 강력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으며, 러시아와 북유럽 레퍼토리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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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지휘자 장 구오용,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 예술감독 함신익. / 사진 심포니 송
이번 공연의 진정한 중심에는 '예술감독' 함신익의 철학이 있다. 그는 KBS교향악단, 대전시향 상임지휘자를 거쳐 2014년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의 첫 글자를 따서 '함신익과 심포니 송(S.O.N.G)'을 창단했다. '노래(Song)'라는 이름은 음악의 본질이 소리의 미학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오케스트라라는 그의 신념을 담고 있다. 지난 10년간 심포니 송은 단순한 연주 단체를 넘어, 클래식의 공공성과 예술적 감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민간 주도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도 '북유럽의 감정'을 단순한 향수나 낭만으로 소비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관객 스스로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함 예술감독은 음악을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의 고독과 생에 대한 경외가 녹아 있는 예술로 바라본다. 이번 '시벨리우스 스페셜' 역시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 위에서 준비됐다.

이날 지휘봉을 잡는 장 구오용(Zhang Guoyong)은 중국 지휘계를 대표하는 교육자이자 해석가로, 상하이음악원 지휘과 교수이자 구이양·칭다오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에서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에게 사사해 1997년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승으로부터 "모스크바 음악원 역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은 학생"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러시아 음악 전반에 대한 통찰과, 북유럽 레퍼토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끄는 시벨리우스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절제 속에서 피어나는 서사로 남을 것이다.

협연자 송지원은 이번 무대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국제 콩쿠르에서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끊임없는 탐구와 내면의 고요함이 있다. 그녀의 연주는 화려한 기교보다 악보 속 여백을 채우는 감정의 결로 평가받는다. 함신익 예술감독 역시 송지원의 순수한 음악적 본능과 해석의 명료함을 높이 평가해왔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파도와 부딪히며, 그 속에서 단 한 줄기 북유럽의 바람처럼 섬세한 선율을 펼쳐낼 것이다.

10년의 여정을 이어온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마스터즈 시리즈는 늘 사람과 자연의 변화를 음악으로 풀어내며, 오케스트라 음악이 삶에 감동으로 닿을 수 있음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이번 여덟 번째 챕터는 시벨리우스의 북유럽적 정서를 통해 그 지향을 한층 확장한다. 이 무대는 단지 한 작곡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악의 본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시벨리우스의 세 작품은 가을의 공기처럼 스며들며, 관객의 기억 속에 조용히 남을 것이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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