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협력·친환경 선박 미래사업 포석
개척 정신 잇는 '젊은 리더십'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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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 취임으로 HD현대그룹은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의사결정을 단순화해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고 신성장 투자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조선업은 한미 협력과 중국과의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건설기계·석유화학 등 사업은 불황을 딛고 새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그룹 전반의 사업을 주도해 온 정 회장은 이제 재계에서도 가장 젊은 리더십을 앞세워 사업 비전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HD현대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이날 승진 후 임직원에게 보낸 첫 사내 메일을 통해 "지금 그룹이 직면한 경영환경은 매우 엄중하다"며 "미중 패권 경쟁, 글로벌 경기침체, 중국발 공급과잉 등 복합 리스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회장은 지난 17일 수석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새 수장이 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에 이은 3세 오너 경영이면서도, 창업주 개척 정신을 잇는 '젊은 리더십'으로 그룹이 봉착한 구조적 위기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1982년생인 그는 국내 주요 그룹 총수 가운데 최연소로, 이전까지 최연소 총수였던 구광모 LG그룹 회장(1978년생)보다 네 살 어리다. 또래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1984년생)은 아직 승계를 준비 중이다.
정 회장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그룹의 핵심 축인 조선 및 건설기계 사업의 구조적 위기를 먼저 거론했다. 조선업의 경우 최근 몇년간 호황 사이클이 지속됐으나, 글로벌 발주량이 급감하고 중국이 선가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건설기계 사업 역시 미국 관세와 중국 경쟁업체의 시장 잠식으로 어려운 상황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1972년 울산조선소 기공식 이후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가능성을 찾아내고 실행해 결국 '우리만의 경쟁력'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선박 발주 감소 분위기에도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이날 초대형원유운반선 2척에 대한 수주 소식을 알렸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총 95척을 수주, 연간 목표의 70.7%를 달성했다.
정 회장은 디지털,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미래형 조선소라는 HD현대만의 조선소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나가며, 중국과의 원가 경쟁력 차이를 줄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HD현대는 해외 야드 확보와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한 글로벌 신규 시장 개척도 병행하고 있다.
건설기계 부문에 대해선 내년 1월1일 예정된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합병 법인 출범을 언급했다. 정 회장은 "양사의 자산을 한데 모아 최적의 글로벌 생산체계를 만드는 발걸음을 뗐다"며 "앞으로 영업에 집중하고 인도·브라질·호주 등 신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통합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고성능 소형장비와 친환경 장비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 부문은 각각 정제마진 악화와 중국발 공습으로 올 상반기 업계가 대부분 적자를 기록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정 회장은 "불황 속에서도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며 "해외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순환·바이오 등 친환경 제품과 윤활유·발전 등 새로운 사업을 계속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석유화학사업은 공정 전반에 걸쳐 투입원료, 운전조건, 스팀·에너지 밸런스 등을 최적화하는 지속적인 혁신 활동을 통한 원가 개선이 필요하다"며 "경영진들과 에탄 직도입, 권역별 석화단지 통합계획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전력기기 부문은 최근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로 호황을 맞고 있다. 정 회장은 "HD현대일렉트릭이 지금의 기회를 살려 근본적인 체력을 다져야 한다"며 "경기사이클의 영향을 덜 받는 배전사업 경쟁력을 강화하자"고 당부했다. 단기 호황에 안주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단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이번 담화문에서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만의 DNA가 새로운 미래 주역에게 전수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며 "언제 어디서든 여러분과 만나 경청하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만간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끝으로 그는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권오갑 전 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동안 보여주신 헌신과 비전의 리더십을 깊이 새기고, HD현대의 발전과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