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저소득층, 사교육 3배 격차…서울런, 격차 해소 방점
'인서울' 성과주의 보다 '학력 격차 해소'방향 올곧게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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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왜 초3 이전 영어교육을 선택했는지 이해하려면, 영어·수학 과목의 '학습위계성(learning hierarchy)'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기초가 단단하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라잡기 어렵고, 초기 격차가 중·고등학교까지 누적되는 과목이 바로 영어와 수학이다. 이에 중학교만 가도 '수포자, 영포자'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 지점은 정부의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AIDT) 추진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되었다. AIDT의 원래 취지는 학습격차 해소였고, 도입 단계에서 영어·수학을 가장 먼저 적용하려 했던 이유도 '위계성 과목의 기초학력 결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문해력 저하 등 여러 우려와 논란 속에 정책은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기초 단계에서의 작은 차이가 학력 전체를 좌우한다'는 정책적 진단 자체는 타당한 문제 제기였다. 중앙정부가 멈춘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이 원칙을 조기 영어교육이라는 방식으로 현실화한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서울형 영어교육 시범사업은 서울런의 본래 취지인 '교육격차 해소'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런은 사교육을 대체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갈라지는 '출발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교육 보완정책이다.
초1·2는 정규교과 이전 단계이지만, 실제로는 가정 배경에 따라 영어 노출량과 기초 문해력이 가장 크게 갈리는 시기다. 특히 사교육을 통해 상당수 어린 학생들이 영어에 조기 노출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공이 기초 단계에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이번 조치는 학습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고소득층(월소득 800만 원 이상) 어린이의 영어 사교육비는 월 12만7000원으로, 저소득층(300만 원 미만) 가구의 3배를 넘는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자녀의 교육 격차가 커지고 있음은 이미 학문적 증명이 끝났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났다'는 통찰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된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정보 자본과 언어 자본의 격차가 초등 저학년에서 뚜렷하게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 웹 콘텐츠의 절반이 영어로 제공되는 현실에서 영어는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 자본'이자 생존 도구가 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울형 영어교육 모델'을 구축하고, 향후 지원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회성 복지가 아니라 근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 으로 가려는 시도다. 물론 100명의 시범사업이 서울 전체의 격차를 단번에 줄이진 못한다. 그러나 공공이 '언제 격차가 발생하는가'를 정확히 짚고 초기 개입에 나섰다는 점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동안 서울런은 '인서울 합격자 수' 중심의 홍보로 성과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조치는 '기초학력 보장'이라는 서울런 정책의 본질에 한 단계 다가갔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공교육 정책의 성패는 화려한 합격 실적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언제부터 뒤처지는지를 포착하고 그 순간 개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초1·2 영어지원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했다.
서울시는 이제 "어디에 합격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되었는가"에 답해야 한다. 이 방향이 장기적으로 흔들림 없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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