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으로 이어진 신앙과 인류애, 연말의 공동체적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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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송년의 경계에 놓인 이번 공연은 축제의 흥취에 기대기보다, '합창'이라는 형식이 지닌 의미를 중심에 두고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세 작품은 기쁨과 신앙, 그리고 인류애와 평화라는 주제를 오늘의 청중 앞에 다시 불러내며, 연말이라는 시간의 감각을 음악적으로 확장한다.
공연의 문을 여는 작품은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크리스마스 협주곡 제8번 사단조'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상징하는 레퍼토리로 자주 언급되는 이 곡은 화려한 축제라기보다 서정적이고 경건한 정서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현악 중심의 음향은 고른 균형 속에서 선율의 결을 선명히 드러내며, 차분한 분위기로 공연의 첫 장을 연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목동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럽고 평온한 흐름이 더해져, 크리스마스 밤의 고요하고 경건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연말 공연의 첫 곡으로 이 협주곡이 배치된 점은, 관객이 서두르지 않고 음악의 흐름에 천천히 스며들도록 이끄는 구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어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 248' 중 제6부는 공연의 성격을 보다 또렷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주여, 교만한 원수들이 분노할지라도'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곡은 동방박사들이 예수에게 경배한 현현절(Epiphany)을 위한 음악으로, 단순한 탄생의 기쁨을 넘어 구세주의 빛이 세상에 임했음을 선언하는 신앙적 확신과 장엄한 분위기를 함께 품는다.
합창과 독창, 오케스트라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장면은 바로크 음악 미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기대된다. 독창이 서사를 세밀하게 다듬는다면, 합창은 그 감정을 공동체의 언어로 확장시키며 음악의 방향을 잡아준다. 이번 무대에서 이 작품은 프로그램 흐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지점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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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윤의중 지휘자가 제8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국제 교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2025년 1월 인도네시아 반둥 합창심포지움 초청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바흐와 베토벤이라는 대형 합창 레퍼토리에서 인천시립합창단이 더하는 울림은, 이번 공연이 강조하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은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라단조 합창'이다. 연말마다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지만, 이 곡이 반복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은 인류애와 평화를 기리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며,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시대를 초월한 상징성을 지닌다.
합창이라는 집단적 형식을 통해 '함께 노래한다'는 행위를 음악적으로 확장한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와 송년의 시간대에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때 음악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마음을 정돈하는 하나의 의식에 가까워진다.
이 흐름을 관통하는 중심에는 지휘자 함신익이 있다. 그는 뉴욕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보스턴 심포니홀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남미의 주요 무대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거나 협연해 왔다.
최근에는 남미 오페라 무대와 중국 주요 도시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을 이어가며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행보는 시대와 양식을 가로지르는 이번 프로그램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과정에서 해석의 폭을 더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함신익과 심포니 송은 이러한 방향성을 무대 위에서 구체화해 온 단체다. 2014년 8월 창단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민간 주도 오케스트라로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진정성, 지속성, 미래세대 육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레퍼토리 연구와 젊은 연주자 발굴,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해 왔다는 점은 이 단체의 특징이다. 이번 마스터즈 시리즈 X는 이러한 축적이 연말의 상징적 레퍼토리와 만나는 지점으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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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순영은 독일 유학과 국내외 무대를 거치며 오페라와 콘서트, 뮤지컬을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왔고, 국립오페라단과 주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폭넓은 레퍼토리를 쌓아 왔다.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수학한 뒤 유럽과 국내 무대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테너 이명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무대를 거치며 오페라 경험을 축적했고, 베토벤 9번과 모차르트 레퀴엠 등 합창 작품에서도 꾸준히 활동해 왔다.
베이스 정인호는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입상을 계기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으며 유럽 주요 극장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네 명의 성악가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창과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만들어낼지 역시 이번 공연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함신익과 심포니 송 마스터즈 시리즈 X'는 화려한 송년 이벤트를 넘어, 클래식 음악이 지닌 본질적 울림을 연말의 시간 속에서 다시 확인하게 하는 무대로 기대를 모은다. 코렐리의 서정과 경건, 바흐의 장엄한 합창, 베토벤이 제시한 인류애의 메시지가 한 무대에서 이어질 때, 관객은 크리스마스의 전통적 정서와 시대를 넘어선 감동을 함께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연말에 다시 울려 퍼지는 이 음악은, 합창이라는 형식이 오늘의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함께 나눌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