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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언제 어디서도 같을 수 없는 ‘이퀄(Eq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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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4. 17:51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2024)의 작품 ‘이퀄(Equal)’(2015)
Forged weatherproof steel, 8 blocks, Each block 152.4×167.6×182.9 cm(60 ×66×72 피트), 2015, MoMA 컬렉션 뉴욕현대미술관은 1986년 '리처드 세라/조각가'와 2007년 '리처드 세라 조각 : 40년'으로 2회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2024)의 작품 '이퀄(Equal)'(2015)은 여덟 개의 강철 블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각각의 강철 블록은 가로 152.4, 세로 167.6, 높이 182.9㎝크기의 거대한 직육면체 형태다. 강철 단조로 제작된 이 압도적인 크기의 블록은 각각의 무게가 40톤에 달한다. 동일한 크기와 무게의 블록 두 개를 위아래로 쌓아 올려 네 쌍으로 설치된 작품은 갤러리 공간 전체를 압도하며 서 있다. 개별 구성 요소의 방향이 다르더라도, 각각으로 쌓인 입방체는 높이가 약 335㎝에 이른다.

리처드 세라는 입방체 위의 입방체, 블록 위의 블록을 구분하기 위해 입방체의 짧은 면과 긴 면의 위치를 회전시켜 설치했다. 동일한 형태의 입방체 일지라도 짧은면/가로면과 긴면/세로면을 맞대어 쌓음으로써 각각의 입방체는 크기의 차이를 드러내며 실존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입방체 간 접촉면의 작은 수치 차이는 동일한 크기와 무게의 입방체 일지라도 두 개의 실존이 '쌓여' '있음'을 노골화하는 동시에 전시 공간 전체의 팽팽한 긴장감을 주도하는 것이다. 리차드 세라의 네 쌍의 입방체 '이퀄'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관람객들이 걸어 다니고 통과할 수 있는 형태의 작업으로서, 위아래로 쌓여 있는 입방체의 주위를 거니는 관람객에겐 아슬아슬한 위태로움, 빈약한 두려움, 입방체와 공간 안팎의 부피감과 무게감, 그리고 언어로 전환 불가능한 숭고함 등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리처드 세라의 '이퀄'은 뉴욕현대미술관(이하 MoMA)의 컬렉션으로 지금도 현재 미술관 2층 갤러리 210 데이비드 게펜 윙(David Geffen Wing)에 설치되어 전시 중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일하다' 혹은 '같다'라는 뜻의 작품 명제 '이퀄'은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관람자의 경험과 감각은 동일하거나 같지 않다. 회화와 부조를 볼 때 변함없이 정면 시점이 지배적인 것과는 달리, 세라의 '이퀄'에서 시점은 어느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

그의 단순한 입방체 조각 작품에서, 결코 동일하거나 같을 수 없는 관람자의 시점이 허용되는 이유는 리처드 세라의 조각이 지닌 독자성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방식을 통해 조각이라는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을 탐구해 온 리처드 세라는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형태, 즉 질량, 무게, 공간을 구분하는 능력, 그리고 중력의 압력하에서 형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그의 조각은 작가의 주장과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닌 작품을 보고 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관람자의 모든 감각을 열게 하고 각자의 다른 경험과 기억을 환기시킨다.

어린 시절 조선공인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과 학창 시절 제철소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강철은 리처드 세라에게 각별한 물질이었다. 라텍스, 네온 튜브, 유리 섬유를 거쳐 납으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걷고 만지고 보는 것'을 강조한 리처드 세라는 매력적인 강철 단조'이퀄' 등의 작업으로 예술계에 없던 구조적 잠재력, 공간감, 전개력을 창출했다. 

리처드 세라는 2017년 12월 예술잡지 '보더 크로싱스(Border Crossing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반복적으로 꾸었던 꿈과 연관된 얘기를 다음과 말한 바 있다. "몇 년 동안 무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물에 떠서 무게 없이 표류하는 것과 관련된 꿈이었죠. 육지에 있는 배와 바다에 있는 배의 차이가 항상 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바다에 있는 배는 물속에서 부피를 변하게 하지만, 육지에 있는 배는 중력에 의해 고정되어 있죠."

결국 리처드 세라는, 작품을 하나의 오브제로써 '강령화'하거나 규범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작품을 관람자 스스로가 경험하기를 원했다. 작품 안으로 들어가고, 통과하고, 둘러보았을 때 관람자는 저마다 다른 경험과 감각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관람자가 작품의 실존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여 예술과 관람자의 공명을 원했으며, 자신의 예술이 관람자의 경험, 기억, 감각의 내용이 되기를 희망했다.

2024년 3월 리처드 세라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MoMA 관장 글렌 D. 로리(Glenn D. Lowry)는 그의 작품 '이퀄'이 지닌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에 대해 회상한 바 있다. "그는 뛰어난 조각가였을 뿐만 아니라, 깊이 헌신적인 정치 활동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이퀄'을 다시 떠올려보면, 저는 이 작품이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지구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늘의 나도 어제와 같지 않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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