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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쿠팡, 韓 ‘공동소송’-美 ‘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디스커버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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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현 기자

승인 : 2025. 12. 28. 20:24

쿠팡 사태로 본 '제도의 벽' <하>
1인당 배상액은 10만원 안팎, 핵심 증거는 기업 독점
"입증 책임 피해자 몫…승소해도 실익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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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모습./연합뉴스
3370만명의 회원 개인정보를 유출한 쿠팡 사태를 계기로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집단 소송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은 지난 25일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개인정보 유출자가 약 3300만명의 정보를 빼돌렸으나 그 중 3000명의 정보만 저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향후 공동·집단소송 과정에서 손해배상 액수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쿠팡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는 소송은 모두 '공동소송'이다. 소송주체가 다수인 경우로, 이번 소송의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가 수십만명에 이른다. 원고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승소 시에도 배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300만명이 넘는 피해자 전원이 소송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집단소송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집단소송은 명시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효력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서만 도입됐다.

공동소송의 경우 배상액보다 소송비용이 더 많이 들 수 있다. 대규모 다중 피해가 발생해도 공동소송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쿠팡과 같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였던 2016년 인터파크·2024년 모두투어 소송에서 1인당 10만원의 배상액만 인정됐다. 더구나 인터파크 소송의 경우, 판결이 확정되는 데 4년이 걸렸다. 몇만원을 받기 위해 수년에 걸쳐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시간적 여력이 일반 국민에게 있을 리 없다.

아울러 다수 원고가 참여하는 소송 특성상 절차의 일관성과 손해액 산정을 위해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다. 쿠팡 소송에서 변호사들은 원고 1인당 최소 1만원에서 최대 3만원까지 착수비를 받고 있다. 성공보수도 10%에서 30%까지로 책정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돈과 관련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거론되고 있다. 실제 피해액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이 커지기 때문에, 피해자와 변호사 모두 적극적으로 사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정보가 유출됐을 때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용된 사례는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 중인 미국에서는 기업에 막대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2017년 미국 신용평가사 에퀴팩스는 1억430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최대 7억달러(약 1조원)의 합의금을 지출했다. 2021년 7660만명의 정보 유출을 막지 못한 미국 통신사 T모바일은 3억5000만달러(약 5100억원)를 내놔야 했다.

그러나 소액의 배상금이나마 받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증거불충분'으로 기업의 책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2011년 네이트·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회사의 보호조치 미이행과 해킹사고 발생 간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정만으로 특정 법률을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여러 차례 판시했다.

이는 소송의 핵심인 기업 내부자료가 '영업 비밀'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제한된 자료만으로 기업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디스커버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재판 전에 양측 증거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동소송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릴 뿐만 아니라, 증거 입증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요구해 피해자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쿠팡 주주 집단소송을 담당 중인 이영기 위더피플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정보통신위원회나 개인정보위원회 결정문 등을 통해 기업 과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이상 피해자가 기업의 고의나 과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위자료 금액도 적어지고, 실질적으로 소송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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