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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영원한 ‘선배’ 안성기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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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6. 01. 06. 13:18

겸손한 성품에 까다로운 기자들도 절로 존경
좌중을 위해서라면 때론 웃음거리도 자처해
좋은 배우에 앞서 좋은 사람이었던 드문 사례
문화부 조성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고참 영화 담당 기자들 가운데 몇몇은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전문가처럼 행세하기 일쑤였다. 이를테면 감독에게 연출을,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식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사자가 아닌데도 낯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이처럼 오만불손했던 일부 기자들도 '선배'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는 영화인이 있었다. '안선배'로 통했던 '국민배우' 안성기였다.

1959년 아역 배우로 출발한 그는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화석'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촬영장은 물론이고 인터뷰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신의 오랜 경력을 단 한 번도 과시하거나 강조한 적이 없었다. 취재진이 얄팍한 지식으로 잘난 척을 하거나 큰소리를 칠 때면, 특유의 하회탈 같은 미소를 곁들이며 상대가 멋쩍지 않게 바로잡아주곤 했다.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배타적이고 자존심만 센 기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안선배'로 호칭한 까닭은 바로 그래서였다.

한없이 근엄해질 수 있는 위치였으나, 좌중을 위해 '선배'란 타이틀을 과감히 내려놓고 웃음거리를 자처할 때도 잦았다.

2006년 가을, 영화 '라디오스타'의 성공을 축하하는 술자리였다. 모임의 사회자로 나선 박중훈이 흥에 겨워 "제가 아는 한, 안성기 선배야말로 결혼 후 아내 아닌 이성에게 한눈 팔지 않은 유일한 한국 남자 배우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란 내용의 수위 높은 농담으로 웃음을 이끌어냈다. 허물없는 관계에서 비롯된 우스갯소리였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처음 보는 여러 기자들 앞에서 다소 과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던 후배의 한마디에, 안성기는 너털웃음으로 화답한 뒤 손으로 장난스럽게 브이자를 그려보여 더 큰 폭소를 자아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쇼비즈니스 세계의 한복판에서 자칫 인생의 독이 될 수도 있는 '소년 급제'로 시작해 70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스캔들·음주·약물 등과 같은 일탈 행위를 단 한 차례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건 실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파고 또 파도 미담 뿐인, 세계 영화사를 둘러봐도 유례 없는 '무결점' '무사고' 연기 외길 인생이었던 덕분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더 신기한 건 그의 이 같은 모습이 법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게 느껴지기보다, 늘 친근하게 와 닿았다는 점이다. 초인적인 자기 절제 능력과 더불어 이를 부담스럽지 않게 포장하는 넉넉하고 겸손한 성품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었던 '안선배'가 벌써 그립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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