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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칼럼] 인공지능은 인간을 더 창의적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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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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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피아니타 17번(Pianita number 17)'. 단조의 애절한 화음과 부드럽게 상승하는 아르페지오가 잃어버린 사랑의 감정을 호소력 짙게 전달하는 이 피아노곡은 놀랍게도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 유튜브 비디오를 학습한 인공지능(AI) 모델 '아리아(Aria)'가 작곡한 곡이다. 생성형 AI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과연 AI는 스스로 진정한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인간은 과연 더 창의적인 존재가 될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AI가 이미 창의성의 영역에 깊숙이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2022년 챗GPT의 등장 이후, AI는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 등 예술 창작뿐만 아니라 과학적 가설 수립에 이르기까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가 제안한 컴퓨터 과학 연구 아이디어가 인간의 것보다 더 참신하고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AI가 방대한 데이터 학습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계적 창의성'의 충격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보여준 제2국의 37수, 소위 '5선 어깨 짚기'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어린아이가 대국에서 '5선 어깨 짚기'를 뒀다면 바둑학원 선생님께 혼났을 법한 수였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것이 결코 나쁜 수가 아님을 증명했다.

당시 바둑계는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직관'과 '창의성'의 성벽이 무너졌다고 탄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계가 보여준 새로운 지평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이후 등장한 구글 딥마인드의 체스 인공지능 역시 인간 마스터들이 상상하기 힘든 과감한 '퀸 희생' 전술을 구사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는 AI가 인간의 사고가 갇혀 있던 '상자 밖'의 수를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그러나 AI의 결과물을 진정한 창의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창의성 연구자들은 AI가 결과물은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언정, 인간이 창작 과정에서 겪는 진정성과 예술적 고민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네이처(Nature)지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 조절 시스템을 규명하는 실험에서 챗GPT-4는 인간 과학자들과 달리 데이터와 맞지 않는 가설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AI가 호기심이나 진리 탐구에 대한 내적 동기 없이 확률적 패턴에만 의존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은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증강하기보다 오히려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역설이다. 알파고 등장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프로 바둑 기사들 사이에서는 개개인의 독창적인 '기풍(棋風)'이 사라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모든 기사가 인공지능의 추천 수를 암기하고 모방하면서, 대국 내용이 단조로운 패턴으로 수렴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문 실험에서 AI의 도움을 받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결과물의 다양성이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쯤에서 최초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공지능은 인간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과연 인간의 창의성을 증폭할 것인가, 아니면 문화적 다양성을 감소시킬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AI가 활용되는 분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바둑을 예로 들어보자. 바둑을 인간의 개성과 직관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예술(Art)'로 정의한다면, AI의 등장은 재앙에 가깝다. 인간만의 서사와 고뇌가 담긴 프로기사들의 예술적 기풍은 사라지고, 효율성만 남은 건조한 수순들이 판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예로부터 바둑을 '수담(手談)', 즉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불러온 것도 이러한 예술적 관점을 반영한다.

반면 바둑을 신의 한 수, 즉 정답을 찾아가는 '과학(Science)'으로 정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는 인간이 수천 년간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석과 묘수를 찾아내어 바둑의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해주었다. 과학적 발견과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AI는 분명 우리의 창의적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혀주는 도구다. 인간의 고정관념에 갇혀 빛을 보지 못했던 수법들이 AI를 통해 새롭게 조명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AI 시대의 창의성은 양날의 검과 같다. AI는 단백질 구조 예측과 같이 명확한 목표가 있는 과학적 문제 해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창의적 도구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고유한 경험이 중시되는 예술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AI에 대한 무비판적인 의존은 자칫 인간 정신의 위축과 문화적 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창의성'의 정의를 재정립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다. AI가 보여주는 결과물의 화려함에 매몰되어,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인간의 성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AI를 통해 효율적인 답을 얻되,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며 기존의 규칙을 의심하는 '인간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창의성의 마지막 보루이자, AI와 공존하며 인간 예술의 가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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