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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거목’ 이해찬 전 총리 별세…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으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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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6. 01. 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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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1월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이자 민주당계 정당의 '영원한 전략가'로 불렸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베트남 출장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긴급 시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민주평통 사무처는 이날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이 수석부의장이 25일 오후 2시 48분(한국시간 오후 4시 48분) 호치민시 떰 아인 병원에서 운명하셨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고인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지난 22일 호치민시에 도착했으나, 이튿날인 23일 오전 급격한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며 귀국을 시도하던 중 떤선녓 공항에서 쓰러졌다. 현지 의료진이 스텐트 삽입 등 최선의 응급 조치를 시행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특사를 급파하며 지원에 나섰으나, 심정지에 따른 쇼크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인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투옥되며 고초를 겪었다. 그가 1978년 서울 신림동에 차린 사회과학 서점 '광장서적'은 당시 민주화 운동권 학생들의 사상적 해방구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36세의 젊은 나이로 국회에 입성한 고인은 이후 관악과 세종시를 오가며 7선 의원을 지냈다. 단순한 다선 의원을 넘어, 그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한 '킹메이커'이자 행정가로 평가받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46세의 나이로 초대 교육부 장관에 발탁된 그는 고교 평준화와 학력고사 폐지 등 파격적인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 당시 정책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을 일컫는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는 국무총리를 맡아 헌정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 '책임 총리'로 불렸으며,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고인은 탁월한 정세 판단 능력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선거 승리를 이끈 '전략통'으로도 통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권 여당 대표를 지내며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2020년 정계 은퇴 후에도 상임고문으로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적극 지원하며 그가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고인을 향해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라며 깊은 신뢰를 표한 바 있으며,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10월 그를 장관급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했다.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완고한 성격으로 여러 차례 설화(舌禍)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와 정책 추진력은 여야를 막론하고 인정받았다. 정부는 현지에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협력해 장례 절차와 국내 운구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민주 진영의 거목이 쓰러졌다는 비보에 한국 정치권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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