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탱크 포화에 산유국 '강제 감산'
국제 유가 선물, 100달러 돌파
'포효' 멈춘 미 경제 지표…백악관 "일시적 공포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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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가 막히면서 국제 유가는 8일(현지시간)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휘발유·디젤·항공유 등 정제유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충격이 '공포 프리미엄'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며 최악의 경우에도 몇주 안에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외신들은 해협 봉쇄 장기화와 에너지 인프라 공격 확산이 세계 경제와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과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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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 공격을 이어가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UAE) 선적 예인선 무사파(Musaffa) 2호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 후 침몰해 인도네시아인 선원 3명이 실종됐다.
인도네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이 배에는 인도네시아인 5명을 포함해 인도·필리핀 출신 승무원 7명이 타고 있었으며 4명은 생존했지만, 인도네시아인 3명은 실종돼 UAE와 오만 당국이 수색 중이다.
보안업체 뱅가드는 이 예인선이 앞서 미사일 공격을 받은 몰타 선적 컨테이너선 사핀 프레스티지호(Safin Prestige)를 지원하려다 미사일 2발을 맞았다고 밝혔다.
유엔 국제해사기구(IMO)는 무사파 2호 침몰로 선원 4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혀 인도네시아 외무부 발표와 인명 피해 규모에 차이가 나타났다.
호르무즈해협 통항 자체도 사실상 멈춘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이 자동식별장치신호(AIS)를 분석해 집계한 선박 추적 자료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해협을 통과한 상선은 이란 연계 선박뿐이었다. 이란과 연관이 없는 마지막 상선은 중국 소유 벌크선 시노 오션(Sino Ocean)이었다.
블룸버그는 2월 말 하루 40~50척 수준이던 상선 이동이 3월 들어 양방향 모두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지며 '거의 완전한 정지' 상태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미사일과 드론 활동이 선박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면서 대부분 유조선이 해협 진입을 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광범위한 신호 간섭'과 '스푸핑(spoofing·위치 조작)' 때문에 유조선 통항에 대한 실시간 추적이 어렵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마린 트래픽' 자료를 분석, 2월 28일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이란 공격 개시 이후 호르무즈해협 입·출항 선박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2월 26~28일에는 6시간 단위 기준 수십 척이 오갔지만, 3월 이후 대부분 한 자릿수 수준으로 떨어졌고 일부 구간에서는 사실상 통항이 멈춘 상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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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 봉쇄로 유조선 선적이 막히면서 중동 산유국들은 저장 탱크 포화와 수출 차질을 우려해 감산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라크의 원유 생산은 하루 약 430만배럴에서 170만~180만배럴 수준으로 약 60% 급감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도 생산 축소에 들어갔다.
FT는 사우디아라비아·UAE·이라크·쿠웨이트가 생산을 줄이거나 일부 유전 가동을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쿠웨이트석유공사(KPC)는 전날 원유 수출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고, UAE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도 해상 유전 생산 축소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미국 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주 36% 급등해 배럴당 90.90달러를 기록했고, 브렌트유는 92.69달러까지 올랐다.
블룸버그는 브렌트유가 지난주 약 30% 상승했으며 아부다비 머반유(Murban crude) 선물은 지난 6일 103달러, 오만유 선물은 107달러, 상하이(上海)국제에너지거래소에서 중국 원유 선물은 109달러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영국 ICE 선물거래소 자료를 분석, 브렌트유 선물과 머반유 선물은 2025년 내내 60달러대에서 움직이다가 2026년 3월 들어 급등하며 100달러 내외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영국 런던의 에너지 시장 분석·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펙츠의 리처드 브론즈 지정학 부문 책임자는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다음주 초 브렌트유가 세 자릿수 가격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제유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해협 흐름이 3월 내내 위축된 상태로 유지되면 휘발유·디젤 등 정제유가 사상 최고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F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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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들의 저장 여력도 빠르게 줄고 있다. 블룸버그는 JP모건 자료를 분석, 이번 분쟁 시작 후 생산 중단까지 걸리는 기간이 이라크 약 5일, 쿠웨이트 약 12일, UAE 약 14~17일, 카타르 약 20일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수출 우회를 활용할 경우 약 60일까지 버틸 수 있지만, 우회가 없으면 약 33일 수준으로 분석됐다. 사우디는 현재 동서 송유관을 통해 걸프에서 홍해로 원유 선적을 전환하고 있다.
다만 FT는 이론상 하루 약 700만배럴을 서부 항만으로 보낼 수 있지만, 얀부 항만의 선적 능력과 유조선 부족으로 실제 수출량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에너지 인프라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FT는 사우디가 하루 100만배럴 규모 샤이바 유전과 베리 유전을 겨냥한 드론 21대를 요격했다고 전했다.
◇ 백악관의 낙관론 "일시적 공포 프리미엄일 뿐"…외신은 '의구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유가 상승이 공포 프리미엄에 따른 단기적 시장 충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 장관은 CNN방송 인터뷰에서 세계는 현재 석유나 천연가스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며 시장 혼란은 '최악의 경우에도 몇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최근 한달 사이 19%, 1주일 사이 약 16% 올라 갤런당 3.45달러로 상승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상 보험 지원과 해군 호위 검토 등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포효' 멈춘 트럼프노믹스…고용 쇼크와 인플레 공포 직면
이번 전쟁은 미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2월 고용보고서는 9만2000개의 일자리 감소를 기록했고, 미국 출생자의 실업률은 4.4%에서 4.7%로 상승했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우려도 키우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률이 1월 2.4%에서 연말 3%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중동 전쟁이 2022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유사한 원유 공급 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순수출국이기 때문에 유럽·일본·한국 등 수입 의존 국가보다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