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처럼 달려든 투수들 각성
단 2실점으로 묶고 타선 폭발
일본·대만에 지고도 '미국행'
WBC 17년만 토너먼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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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한국 야구대표팀은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호주전에서 '경우의 점수' 3가지(5-0, 6-1, 7-2) 중 하나인 7-2를 완성하며 극적으로 마이애미 비행기 탑승권을 자력으로 따냈다. 경기 내내 흔들렸던 투수진이 2실점 이하로 묶었고, 타선은 5점차 대승을 위한 장타쇼를 펼쳤다. 타선 경쟁력이 충분한 대표팀으로선 마운드가 얼마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었지만, 투수진은 보란듯이 해냈다.
◇100점을 내도 3실점 하면 탈락… 투수진이 단 '두 점'으로 막았다
특히 지난 대만전 역전 결승 투런포를 내주고 고개를 숙인 한국계 빅리거 데인 더닝(시애틀 매리너스)가 경기 후반 결정적인 호주의 공격 기회를 병살로 처리하면서 큰 고비를 넘긴 게 최대 승부처였다. 또 SSG 랜더스의 필승 계투진인 조병현이 1.2이닝을 완벽히 틀어 막으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선발 손주영이 1회 투구 후 통증으로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이후 나온 계투진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호주의 강타선을 단 2점으로 묶었다. 손주영의 1회 커맨드와 구속이 좋아 당초 3~4회까지 기대한 선발 역할을 못한 것이 불안했지만, 이어 나온 노경은(SSG)이 곧바로 노련한 피칭으로 호주 타선을 잠재웠다.
3회까지 롱릴리프 역할을 한 노경은은 경기 초반 폭발한 타선에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체코전 선발로 던졌던 소형준도 4~5회를 책임졌다. 잘 던지다 맞은 1점 홈런이 아쉬웠지만 타자들이 경기 초중반까지 6점을 내주며 일단 경우의 스코어를 맞춰줬다.
박영현(kt wiz)도 6회에 올라와 사사구 1개를 내줬지만 실점 없이 마운드를 지켰다. 계투진의 필승 카드 더닝은 7회 흔들렸지만 무사 1, 2루 위기를 땅볼로 유도하며 더블아웃 시켰다. 2사 3루에선 상대 타자를 힘 있는 하이 패스트볼로 방망이를 유도했다. 크게 방망이를 헛돌린 상대를 보며 더닝은 포효했다. 지난 대만전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는 투구였다.
김택연(두산 베이스)는 8회 올라와 위기를 자초했다. 지난 일본전에서 경기 후반 1.1이닝을 깔끔히 막아준 모습을 기대했지만, 제구 난조로 볼넷과 안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대표팀엔 뒷문을 막아 줄 조병현이 있었다. 조병현은 9회 마무리로 대기했지만 이르게 올라와 남은 아웃카운트 5개를 모두 잡아냈다.
상대한 타자는 7명으로 삼자 범퇴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멀티 이닝을 소화하며 무실점으로 대표팀 마무리 투수의 자존심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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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선은 문보경,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필두로 경기 초반부터 터졌다. 2회초 문보경(LG 트윈스)의 선제 투런포를 시작으로 3회초 이정후가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불러들이는 2루타를 날렸다. 해결사는 또 문보경이었다. 1아웃 1-1 볼카운트에서 문보경은 상대 투수 넌본의 공을 잡아 당겨 적시 2루타를 뽑았다. 이정후는 홈에서 포효했다.
5회초 문보경은 또 좌익수 뒤 안타로 2루에 있던 안현민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날 타점만 5회 만에 4점을 내며 펄펄 날았다. 이제 사이클링 히트(1루타·2루타·3루타·홈런)까지는 3루타만 남았을 정도로 쾌조의 타격감을 뽐냈다.
6회초엔 1라운드 참가자 중 예비 메이저리거 잠재력 1위로 뽑힌 김도영이 추가점을 내줬다. 상대 폭투로 3루까지 진루한 박동원은 김도영의 우익수 앞 안타로 홈을 밟았다. 5-1 상황에서 절실히 필요했던 1점이었다. 뒤이어 8회말 호주는 트래비스 바자나(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추격의 적시타로 다시 탈락 문턱까지 내몰렸기에 천금 같은 추가점이었다.
바자나의 추격 적시타로 한국은 9회초 마지막 1점이 필요했다. 이젠 '한국판 트라웃' 안현민(kt wiz)이 해결했다. 깊숙한 외야 뜬공으로 결승 타점을 뽑았다. 공이 잡히면서도 안현민은 마치 홈런이라도 친듯 펄쩍펄쩍 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팀이 필요했던 마지막 1점이었다.
이 결승점이 나온 순간도 영화에서나 나올 법했다. 선두 타자 김도영(KIA 타이거즈)가 볼넷으로 걸어나가자, 한국에서 가장 주루 센스가 좋은 박해민이 대주자로 나섰다. 박해민이 누상에서 투수를 흔들고,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안타를 기대했지만 결국 뜬공으로 물러났다. 뒤이은 타선이 이정후-안현민이었기에 보내기 번트가 예상됐지만 강공 작전을 펼쳤고 1차 목표는 무위로 끝났다.
이정후는 결정적인 순간 평범한 내야 땅볼로 이어지는 병살 코스로 공을 보냈다. 이때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1차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빅리그에 입단한 트래비스 바자나(2루수)가 버티고 있는 호주 내야진이 실책으로 자멸했다. 투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된 공을 잡은 유격수가 바자나에게 치명적인 악송구를 범했다.
1사 1, 3루의 기회를 얻으며 기사회생한 한국은 안현민이 정말 필요했던 단 한 점을 외야 뜬공으로 완성했다. 흔히 말하는 1점이 필요할 때 아웃과 점수를 맞바꾸는 희생 플라이인 '고급 야구'가 결승점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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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은 조병현에게 뒷문을 맡겼다. 볼넷으로 9회 1사 1루 위기를 내준 조병현은 윙그로브의 방망이에 장타성 타구를 얻어 맞았다. 우중간을 가를듯 쏜살같이 날아간 공은 몸을 날린 이정후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갔다. 이정후는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대표팀의 실점을 막았다. 잡지 못했다면 1루 주자는 무조건 홈으로 파고들 수 있는 깊숙한 타구였다.
마침 박해민이 중견수로 나서면서 우익수로 수비 위치가 바뀐 이정후가 보인 캐치여서 더욱 드라마틱했다. 특히 직전 타석에서 병살로 끝날 뻔한 타구가 상대 실책으로 그토록 원하던 1점이 완성됐으니, 이보다 더 짜릿할 순 없었다. 이정후의 다이빙 캐치로 분위기는 한국에 확실히 넘어왔다. 조병현은 마지막 카운트를 잡고 동료들과 부둥켜 안고 환호했다.
한국은 미국 마이애미로 건너가 한국시간으로 14일 오전 7시30분 토너먼트 첫 판에 나선다. 8강 상대는 D조 1위다. 빅리거가 즐비한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가 나란히 2승으로 1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17년 만에 다시 2라운드 본선 무대에서 세계 최강의 야구 실력을 지닌 빅리거들과 당당히 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