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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에 유럽 경제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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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기자

승인 : 2026. 03. 17. 09:23

에너지 가격 급등에 산업·물가 동시 압박
부채 증가·금리 상승에 정부 대응 여력 부족
유가 125달러 이상 오르면 유럽 경기침체 가능성
BRITAIN-IRAN-US-ISRAEL-WAR-SHIPPING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잉글랜드 동부 펠릭스토 항구에 라이베리아 선적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유럽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AFP=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유럽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간 경기 침체를 겪었던 유럽이 올해 성장 회복을 기대하던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등장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유럽 정책 당국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4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달리 현재는 정부 부채와 차입 비용이 크게 늘어서다. 당시에는 코로나19 경기 부양 정책으로 가계와 기업의 자금 여력도 비교적 충분했다.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유럽 전역에서 차입 비용이 급등하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준으로 최소 6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은행 총재는 프랑스 방송 RTL 인터뷰에서 "더 이상 쓸 돈이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유럽의 탈산업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을 중국이나 미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전쟁 발발 이후 열흘 동안 유럽이 석유와 가스 가격 상승으로 약 30억 유로(약 5조1440억 원)의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추가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독일 서부 농기계 제조업체 클라스의 공장 관리자 게르하르트 프라이타크는 "가장 먼저 나타난 영향은 물류 비용 상승"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에너지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장기 계약을 체결해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2022년 에너지 위기 이후 공장 공정 온도를 낮추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도입하는 등 비용 절감 조치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농가에 가해지는 압박이다. 얀-헨드리크 모어 클라스 최고경영자(CEO)는 디젤과 비료 가격 상승이 농가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며 "결국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동부 비료 업체 에스케이더블유 피에스테리츠도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 대변인 마르쿠스 보슈는 "주요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 상황이 매우 위협적"이라며 "결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스위스 초콜릿 업체 린트는 중동 갈등 여파 등을 이유로 올해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독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 역시 전쟁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며 포르쉐와 아우디 등 고급 브랜드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 경제는 국제 무역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도 취약하다고 WSJ은 지적했다. 유로존의 대외 무역 규모는 경제 전체 생산의 약 절반에 달한다. 이는 중국(약 35%)과 미국(약 25%)보다 높은 수준이다.

런던의 경제 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시어링은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성장률 약 1% 수준의 유럽 경제가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식량과 에너지를 순수입하는 영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분석했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경제학자 앤드루 위샤트는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와 코로나19, 리즈 트러스 전 총리 시절 금융시장 혼란, 그리고 현 노동당 정부의 증세 등 누적된 충격에서 막 벗어나려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다시 불확실해졌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당초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의 금리 인하가 예상됐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임금 상승을 자극할 경우 오히려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3개월 동안 봉쇄되고 유가가 배럴당 120~150달러 수준으로 상승하는 경우 독일의 내년 국내총생산(GDP)이 약 0.5%포인트 가까이 감소할 수 있다고 독일 국책은행 KfW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디르크 슈마허는 분석했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2023년 약 1050억 유로 규모의 에너지 지원 정책을 시행했지만 현재는 공공부채가 3조4800억 유로로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대규모 지원을 다시 시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정책 위주로 대응하고 있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장관은 주유소가 하루에 한 번 이상 가격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럽 각국은 전략 비축유 방출에도 합의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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