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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에는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오래된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라 합의된 조약은 당사국들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근거가 된다. 이는 국가 간의 신뢰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국내 정세가 변했다는 이유로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음을 규정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성향의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의 휴전 협상에서 이러한 원칙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복잡한 담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핵 합의처럼 정교한 외교적 노력으로 갈등을 조정했지만, 지금은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약속을 쉽게 뒤집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국제사회가 지켜온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이 처참히 짓밟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상대의 수뇌부를 타격하거나 약속을 비웃는 듯한 군사 행동을 감행하는 것은 대화라는 형식 자체를 조롱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외교적 해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속내를 떠보거나 말을 바꾸는 기만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제의 약속이 오늘은 위협으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 국제사회는 스스로 말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예의와 존중이 사라진 외교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피해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휴전 조항이나 복잡한 외교 문서가 아니다. 지도자들이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감당하고 책임지는 태도다. 신뢰가 없는 시대에 약속은 결코 평화를 만들 수 없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라는 선대의 현인들의 지혜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실제로 지켜질 때 비로소 중동의 하늘은 전쟁의 불길 대신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